[9국05-01] 문학은 심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소통 활동임을 알고 문학 활동을 한다

대화1

보통 문학 작품이 심미적 가치를 지녔다고 보잖아요.. 이 때의 심미적 가치는 꼭 아름다운 것 뿐만 아니라, 슬프고 괴롭고, 추하거나 웃긴 것도 삶의 진실을 담고 있다면,, 미적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감동 때문일까요?,,, 삶의 진실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동이요… 그렇다면 미적 가치와 감동을 거의 동일하게 여겨도 문제가 없는 것인지(감동이 느껴지기 때문에 미적가치가 있는 것이다..)….. 뭔가 오류는 없을지…요.. 한 단원을 거의 며칠 째 끙끙거리고 있네요;;;;;

1

저도 첫 단원 성취기준이 심미적 가치와 관련된거여서 심미적이란걸 어떻게 정의해야 좋을까라고 고민해봤는데… 교육과정 내에는 딱히 이렇다할 정의가 나와있지는 않은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나름대로 생각을 좀 해봤는데 전 아름다움이라는게 결국 새로움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싶더라구요 모든 예술은 결국 새로워야 가치가 있는 것이듯이.. 일상의 반복된 사건처럼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모두 하나하나 새로운 것들이고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그 새로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움, 미적 가치라는 것은 새로운 내용과 표현을 통해서 우리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느끼게 해주는 것을 말하는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감동이 느껴지는게 아닐까요..

2

원래 문학에서 심미적 가치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게 아닙니다. 심“미”가 들어가는 걸 보고 교과서 집필자들이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단원을 구성해서 그래요 심미적 가치는 아주 간단히 말하면 , “내용과 형식의 일치에서 오는 쾌감”을 말하죠. 그게 있다면 그 내용이 악하든 추하든 “심미”가 되는 거구요. 교사들이 문학을 내용적으로 많이 접근하고 구조나 형식을 분석하는 힘이 떨어지기 때문에 심미적 체험을 스스로도 잘 못느끼고,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줄 방법은 더 없지요. 잘 쓴 문학비평문을 읽으면서 가끔 소름이 끼친다면 그 순간이 심미적 체험을 하는 순간입니다.

예전에 7차에 육체미소동 이라는 작품이 교과서에 실려 있었는데 그런 작품을 읽으면서 심미적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내용은 전혀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http://jangi.net/RG/rg4_board/view.php?&bbs_code=free&bd_num=70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은 명작이지만, 흠집하나없는 완전무결은 아닙니다. 나룻배가 있고, 행인이 있는데, 행인이 떠나고 나니, 행인이 있어야 비로소 나룻배가 있다는 새로운 깨달음(불교의 연기설)에 도달한다면, 작품의 마지막 연은 다음과 같이 고쳐쓰는 게 더 폭넓은 의미를 구현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연에 주목해서 아래의 시와 느낌을 비교해 보세요.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당신은 행인
나는 나룻배.

이렇게,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볼 줄 아는 눈을 심미안 이라 부르고, 그것을 작품 속에서 자꾸자꾸 자꾸자꾸 발견해 나가는 일을 심미적체험이라 부릅니다.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1902년생 김지영>이 되지 않고 낭만적 인 작푼으로 남은 것도 옥희라는 서술자를 설정한 형식미에서 오는 거고요. 주인공시점이든 3인칭이든, 어머니 본인을 중심으로 서술했다면 강고한 사회체제에 개인이 패배하는 작품이 되고 분위기는 운수좋은날이나 나아가 최서해의 탈출기에 방불하게 됐을 겁니다^^ 근데 그정도의 주제의식을 가지지 않은 작품이라면 옥희를 화자로 내세워 이정도에서 타협하는게 작가의 최선이었던 거고요^^

마지막으로, 그 형식과 내용이 어긋난 작품이 많습니다. 교과서의 작품들도 그렇고요. 그게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면 단순실수나 역량의 미숙이므로, 이것은 좋은 작품, 이것은 덜 좋은 작품, 이건 쓰레기, 이렇게 가릴 수 있는 힘이 심미안, 즉 아름다움을 가릴 줄 아는 눈이고, 그것이 바로 12년간의 문학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목적지입니다.

어른이 되었을때 좋은 글과 나쁜글, 글만이 아니라 좋은 현상과 나쁜 현상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을 가릴 수 있는 어른, 고급독자가 되는 것이지요. 윤리적인 일반론에서 “좋은”을 아름다움 으로, “나쁜”을 추함 으로 바꾸면 미학적인 문예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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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통사를 쓰신 조동일 박사의 분류에 의하면 미적범주는 숭고미, 우아미, 비장미, 골계미가 있다고 공부한 기억이 나네요~ 이 범주가 교육과정상에 실현되어 있다고 보는게 가장 직접적인 이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생각을 더하자면 심미적 가치의 범주는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의 측면만이 아니라, 그 표현방식까지 고려한 넓은 의미에서 보는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진짜 '예쁘다'라고 생각되는 르누아르의 미술작품도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지만, 변기 하나를 예술작품으로 칭했던 뒤샹의 창의적 발상도 미적 아름다움의 범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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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적 가치는 인식 주체인 자아가 대상인 세계에 대해 느끼는 미적 인식입니다. 이는 자아가 우러러보는 숭고미와 깔보는 골계미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숭고미는 우아미와 비장미를 이름고 골계미는 해학미와 풍자미를 포함하지요. 문학에서는 미적 즐거움을 미학aesthetics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표현의 방식에서도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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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1학기 1과의 제재가 유안진의 '상처가 더 꽃이다'이네요. 성취기준은 '문학은 심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소통 활동임을 알고…'이고요. 그래서 1과 1차시에는 방탄소년단의 'on' 을 함께 듣고 여기에서 시적화자가 느낀 상처, 시적화자의 심정… 이런 데서 출발해 보려 합니다. http://blog.daum.net/nojeong/15210409

선생님, 그래서 저는 모둠과제지의 1번이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예요^^ '심미적'이라는 말이 중3 아이들에게 너무나 추상적인 말이어서, 열여섯 살 남학생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뭘까 얘기해 보게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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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품의 미적기능(고2문학)에서 작가의 개성적 표현이 드러난 부분을 아름다움(?)을 발휘한 부분으로 설명합니다. 현대시로 치면 음악성 형상성 함축성이 드러난 부분이요. 소설이라면 시점이나 독특한 문체의 선택/인물 형상화의 방법 같은 것이 될 것 같습니다. 내용과 형식은 무자르듯 되지 않으므로… 위에 ‘내용과 형식의~ ‘ 같은 설명이 정확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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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수업 구상하며 공부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줄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심미적 체험을 아래와 같이 풀어서 생각해봤어요.

문학 작품을 감상하며 다양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심미적 체험’이라고 합니다. 교과서에서는 ‘심미적 체험’이라는 말이 많이 나올 거예요. 이 말은 ‘문학 작품을 감상하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풀어서 이해하면 어렵지 않습니다. 첫 시간에 이렇게 '심미적 체험'이라는 것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면 아이들이 '아, 그냥 문학 작품을 읽으며 다양한 감동을 느끼는 거구나.'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화2

혹시 '문학은 심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소통 활동임을 알고 문학 활동을 한다.' 성취기준 수업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시면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비상 교과서에는 <제망매가>가 나오는데, 아이들이 공감하기에 그닥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지필, 수행 부담은 없는데, 재미있게 수업 해볼 수 없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심미적 체험을 한 작품을 가르칩니다..ㅎㅎ 아이들 흥미와 수준도 고려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감탄하며 읽은 작품들을 가르쳐야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신나게 수업을 하더라고요ㅎㅎ 꼭 교과서에 나온 작품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저는 지금 김소월님의 <진달래꽃>으로 수업중인데, '시적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물어보니 아이들의 해석이 거의 반으로 갈리더라구요. (교과서에 나오는 교수님들 해석과도 비슷하게 나와서 신기했어요. ^^) 마무리에서 시간 남으면 god의 <거짓말>, 나훈아의 <무시로>, UV의 <쿨하지 못해서 미안해> 등을 가사만 띄우고 들려준 뒤에, 애들더러 자신이 생각하는 <진달래꽃> 해석에 가장 가까운 노래를 찾아보고 그 이유를 말해보라고 할 생각이에요.

수능특강에 고정희의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와 연계해 보는 건 어떨까요. 김수업 선생님의 <백석의 노래>에서 우연히 발견한 시 '적경'이 너무 좋아,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과 함께 공부했어요^^

학생들이 심미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쉽게 도입하면 좋을 것같아요. 제 생각에는 드라마같은 데서 시가 활용되는 사례도 많고요. 제망매가는 아이들에겐 심미적 체험보다는 지적체험 중심일듯한 ^^;; https://youtu.be/lCmvuCKA6Os

국어교사모임에서 배웠던 시집 읽고 시편지 주고 받는 활동이 성취기준과 가장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줄 때보다 받았을 때 학생들이 문학의 힘을 더 많이 받더라구요^^ 위의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신 대로 드라마 등에서 사용된 예나 학생들에게 친근한 노래 등을 활용한 수업을 하신 후 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우선 교사 본인이 심미적 체험을 한 작품을 가르친다는 김지향 선생님의 말씀이 가장 진리에 가까운 답입니다. 교사 본인도 문학작품을 통해 심미적 체험을 해 본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걸 교육적으로 전달하기는 더 어렵지요 심미적 체험이 뭔지도 정확하게 모르는 분들도 있고요. 심미적 체험은 내용과 형식의 조화에서 오는 쾌감을 말합니다. 문학 작품의 형식이 그 내용과 딱 맞아 떨어질 때 그걸 설명하는 문학평룐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끔 소름돋는 경우가 있지요. 그게 소설이든 시든 음악이든 영화든 예술은 다 그렇습니다.
  •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와 가족들이 비맞으며 집으로 돌아갈 때 끝없이 하향하는 계단을 찍은 것.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화자가 왜 미래 세대를 대변하는 옥희여야 하는지. 말러의 교향곡이 오케스트라에 물량공세를 하여 양의 변화가 질적 변화를 일으켜 현대의 고전이 되었는지. 윤동주의 서시가 괴로워했다, 라는 과거형으로 시작해서 걸어가야겠다, 라는 미래형을 거쳐 스치운다. 라는 현재형 어미로 마무리되는 것이 시의 주제를 어떻게 형상화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한 설명을 읽거나 들으면 우리는 심미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물론 못 알아들으면 할 수 없는 거고, 그 설명자의 화려한 말빨이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 제망매가에서도 그러한 감동의 포인트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강의식 수업에서 누이의 죽음, 불교적 윤회, 10구체, 향찰표기를 넘어설 수 있으려면 교사가 먼저 작품에 대해 깊이 음미하고 감동의 포인트를 찾아야합니다.감동의 포인트는 의미적으로만 해선 안 되고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눈으로 보여줘야합니다.
  •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갑니까.. 이별의 인사를 할 기회도 주지 않는 운명의 잔혹함.. 세월호에서 건진 휴대폰에 남겨진, 미처 발신되지 못한 부모님께 보내는 마지막 인사들.. 내가 만약 가족을 두고 떠난다면 어떤 말을 남길 건지, 남겨지는 가족은 어떤 말을 듣고 싶을지, 먼저 가서 미안해라고 보내고 싶지만 그걸 들을 가족은 어떤 심정일지, 월명사는 누이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었을지..
  • 그러다 정신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계절은 가을이고 낙엽은 떨어지고, 죽음은 갑작스럽긴 하지만 어차피 막을 수는 없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며 수용하게 되고, 한 가지에 나고도 가는 곳 모르는 낙엽에 빗대는 문학적인 승화가 일어나지요. 조식의 칠보시에서는 같은 콩나무에서 난 콩과 콩대가 나중에는 콩을 삶을 때 콩대로 아궁이에 불을 때며 형인 조비를 돌려깔 때, “형제끼리 왜 이래요”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마음에 더 와닿듯이. 이응인의 '수박끼리' 에서 수박형제의 서로 위하는 대화를 가져와서 재망매가, 칠보시, 수박끼리의 형제 관계가 어떤지도 좀 비교해주고,
  • 미티찰에 만나기 위해 도를 닦겠다,는 심정은 누이는 당연히 천국 갔을 거라고 믿는 마음인데,
  • 지금 이 교실에 앉아 있는 여러 학생들도 마치 한 가지에 난 나뭇잎같지요. 졸업과 진급이라는 가을바람이 불면 이에 저에 흩어져 가는 곳 모르게 될 거고, 돌아보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 지금은 자의든 타의든 어디로 갔는지 모를 아쉬움으로 남을 텐데, 어른이 돼서 어딘가 좋은 곳에서 우연히라도 만나려면 지금 같은 미숙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뒷골목에서 허름하게 만나고 싶냐. 그렇지 않으려면 월명사가 도를 닦듯이 학생 여러분은 뭘하면서 지금 이 시간을 보내겠느냐? 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때. “아 그렇구나.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아으' 라는 낙구의 시작점, 슬픔에 빠져있다가 바닥을 차고 올라오는 인간력의 발현이다..
  • 뭐 이런 식으로 엮어가면 웬만한 애들은 다 좋아하면서 듣더라구요.. 중학생 인문계생 실업계생 등에 맞게 그리고 본교 학생들의 처지나 실제사례등에 맞춰 중간중간 각색을 해야죠^^
  • ““여러분도 누구나 '아으'하면서 인생의 한 단계를 도약한 경험이 있을것이다, 이 시는 바로 그러한 인류보편적인 깨달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시대와 공간을 넘어 천년 후의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고 그게 여러분이 문학을 공부하거나 책을 읽는 이유이다. 이왕이면 여러분의 개인적 깨달음도 글로 한번 써서 남겨보면 어떻겠냐, 서기3020년의 인류가 여러분의 글을 찾아서 교과서에 실을 줄 어떻게 알겠냐..”” 이런식으로 창작 수업으로 이어 가는 방법도 좋습니다.^^

요번에 제망매가하면서 어제 싸우고 화해 안한채로 학교갔던 형제자매가 갑자기 사고가 나서…이런 식의 상황극?을 줘요. 그러니까 애들이 이해하고 느끼는 바가 현저히 달라져요. 저는 그래서 문학의 경우엔 가능하면 그런 경험을 먼저 떠올리게 한 후에 진도를 나갑니다. 꼭 심미적 경험이 목표가 아니라도 늘 효과가 좋아요

  • 저는 ‘제망매가’를 가르칠 때마다 무척 힘겹습니다. 수업을 시작할 때 먼저 그걸 아이들에게 얘기합니다. 솔직하게~. “나는 이 작품을 가르칠 때마다 아프다. 오늘 작품은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다. 너희들은 아주 가까운 분의 죽음을 겪어 본 일이 있을까? 아직 그런 일이 없다면 정말 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건 분명하다. 앞으로 너희들이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그런 아픔을 겪게 된다는 것! 나도 그런 일이 있었고, 그 기억 때문에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아프다. 세월호 이후로는 그 일이 떠올라서 더 아프다. 오늘 배울 작품은 여러분이 어쩌면 이미 겪었고, 아니더라도 앞으로 반드시 닥쳐오게 될 크나큰 슬픔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 작품을 읽고 간단히 설명한 다음, 풍선을 꺼냅니다. ‘슬픔’이라고 쓴 풍선을 두 개 준비하고, 먼저 하나에 바람을 넣으며 작품을 다시 읽습니다. 그러면서 화자가 겪었을 상황을 상상합니다. 이때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상황을 덧붙입니다. 상황이 늘어날수록 풍선은 점점 커지고, 풍선에 미리 써두었던 ‘슬픔’이라는 글자도 점점 커집니다. 8행까지 읽고~ “이 슬픔이 계속 커지면 어떻게 될까? 터지겠지?” 그러면서 풍선을 터트립니다. 처음 풍선은 너무 크게 부풀리시면 안 됩니다. 소리가 너무 커서 아이들이 놀랍니다. 적당한 크기에서 터트리는 게 좋습니다.
  • 그런 다음 두 번째 풍선을 준비합니다. 앞서 얘기했던 상황들을 다시 얘기하면서 풍선은 부풀립니다. 이번에는 상황을 더 추가하고, 풍선도 더 크게 부풀립니다. 이때는 풍선이 아주 커야 합니다. 아이들이 겁에 질릴 정도로~. 8행까지 읽고~
  • “이 슬픔이 계속 커지면 어떻게 되겠어? 터지겠지?” 터트릴 것처럼 겁을 줍니다. 진짜 터트리지는 않습니다.
  • “그렇게 터져버리면 살 수가 없잖아. 그래서 화자는 어떻게 하는 거야?” 그러면서 풍선을 막고 있던 손을 살짝 풀어서 바람이 “피시식~” 빠지게 하면서 9행을 읽습니다.
  •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 “화자는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슬픔을,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견디고 있어.” 이때 풍선에서 바람이 피시식 빠지는 소리와 9행의 “아아!”가 겹치도록 합니다.
  • 수업 마지막에서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 “나도 오늘 수업이 무척 힘들었는데, 여러분 가운데도 나만큼이나 힘겨웠던 아이들이 있을 거야. 미안해. 그렇지만,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그런 아픔을 겪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아픔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아픔을 어떻게 보살피느냐? 그게 문제야. 이 작품은 그걸 다루고 있단다.”
  • 아이들이 살아가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만났을 때, 어쩌면 이런 작품을 한 번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는 엄마 아빠가 되어 아이에게 풍선을 불어주다, 문득 그 수업이 떠오를 수도 있을 테고요. 수업을 통해 <심미적 체험>을 쌓아가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나이 들어가면서 제망매가가 절창이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특히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겠구나' 부분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나이 탓일까요?

저는 제망매가 수업을 하며 세월호 계기교육을 같이 한 적이 있는데, 먼저 세상을 떠난 내 또래의 학생들에게 제문을 쓰는 마음으로 한 마디씩 쓰라고 했더니 우는 아이들도 있더라고요. 저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간다는 부분이 많이 가슴아픕니다. 죽음을 예견하지 못할 만큼 젊고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떠올라서요.

저는 작년 1학기에 <문학>, 2학기에 <언매>를 가르쳤습니다. <언매> 수업 가운데 하나로 <문학>에서 배운 작품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한 모둠에서 '제망매가'를 골랐는데, 인물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가운데 사서 선생님께서는 몇 달 전에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를 떠올리며 정말 담담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슬픔을 꾹꾹 누르며 말씀하시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고, 그걸 보며 학생들도 많이 울었습니다. 사서 선생님께도 위안의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올해 코로나19로 아버지께 생활방역을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리다 다투게 되고, 그런 뒤에 입원 중에 아버지께서 아버지 생각에 아버지에 대한 글을 다 쓰고 연필을 놓으니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바로 퇴원해서 아버지 모셨는데 그 경험을 하고 나니 김소월의 '초혼'이나 월명사의 '제망매가'나 정지용의 '유리창', 박목월의 '하관' 같은 시들이 다시 가슴에 알알이 박혔습니다. 또 아버지 묘비명을 준비하며 아이들과 삶과 죽음의 체험을 통한 삶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확장하는 수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묘비명 쓰기 -죽음을 통한 삶에 대한 성찰 -직접 다양한 인물의 묘비명과 그 인물의 삶을 고찰 -내 삶을 압축하는 한 문장의 글쓰기 -《내면기행》, 심경호(58편의 묘비명 읽기) 예시)ㆍ'오느라 힘들었지. 앉아서 쉬다가. 사랑해.' 1992.08.16.-2072.04.05. 안수진[카타리나]

  • ㆍ《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ㆍ조지 버나드쇼,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 ㆍ헤밍웨이, '일어나지 못해 미안합니다.'
  • ㆍ에밀리 디킨스.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다.'(called back)
  • ㆍ스탕달,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 ㆍ윈스턴 처칠,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절대로!'
  • ㆍ무라카미 하루키, '소박한 밥상같은 치유자로 살다.'
  • ㆍ신격호(롯데그룹), '거기 가봤나?'
  • ㆍ이병철(삼성그룹), '자기보다 현명한 인재를 모으고자 노력했던 사나이 여기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