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시 한 편만 추천 받을 수 있을까요? 저희 학교에 선생님들도 손을 놓으셨고 관리가 안되는 방황하는.. 학생인데 뭔가 늘 낙인만 찍혀왔던 아이같아서요. '너는 소중한 존재다' 등과 같은 메시지가 담긴 시 혹시 생각나는 것이 있으실까요?

다시 중학생에게 나태주

사람이 길을 가다 보면
버스를 놓칠 때가 있단다

잘못한 일도 없이
버스를 놓치듯
힘든 일을 당할 때가 있단다

그럴 때마다 아이야
잊지 말아라

그 다음에도 버스는 오고
그 다음에 오는 버스가 때로는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떠한 경우라도 아이야.
너 자신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너 자신임을 잊지 말아라

미지수 이장근

나는 미지수다
x이거나 y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 잘 풀면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오답은 아니다
풀이 과정이 맞다면
그땐 답을 의심해야 한다
세상의 답이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미지수다
굉장히 복잡한 문제에 둘러싸여 있다
공식도 통하지 않는다
말썽을 피우는 건
나를 포기해서가 아니다

나는 나를 푸는 중이다

운명을 편곡하다 이장근

원곡은 별로였는데
편곡을 하면
명곡이 되기도 한다

운명이 원곡이라면
어떻게 편곡하느냐에 따라
인생도 달라지겠지

지금은 보잘것없지만
나는 나를 편곡 중이다
원곡을 뛰어넘을 것이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별은 너에게로 박노해

어두운 길을 걷다가
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구름 때문이 아니다
불운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네가 본 별들은
수억 광년 전에 출발한 빛

길없는 어둠을 걷다가
별의 지도마저 없다고
주저앉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
간절하게 길을 찾는 너에게로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

폐허 이후 도종환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꼴통 물 이장근

따뜻한 물은 위에
차가운 물은 밑에

물에도 서열이 있다

모두 따뜻해지려고 노력할 때
차가워지려고만 하는
꼴통 물이 있었다

저러다 얼음이 될 거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는데

얼음이 되는 순간
보란 듯이

물 위로 떠올랐다

장래 소망 지금의 노래2 손택수

나무는 뭔가가 되려고 하질 않아
아무렇게나 자라도 나무는 나무니까

새들도 장래 소망 같은 건 없어
알껍데기를 깨고 나왔을 때 이미 새는
새 자신이었거든

바람은 애써 불지 않아도 바람이야
잠에 빠져 쉬고 있을 때도 바람을
알아보고 흔들리는 잎사귀가 있으니까

강물에게 물어보렴 왜 흘러가냐고.
어딜 향해 가느냐고
답 대신 강물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을 걸
마치 그게 답이라는 듯이 말이야

넌 참 되고 싶은 것도 많지
가고 싶은 곳도 많지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지

그래도 잊지 마렴
넌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아
그 무엇이 되지 않아서 슬퍼할 이유도 없어

나무처럼, 새처럼, 바람처럼 또 흐르는 강물처럼
네가 너 자신일 수만 있다면

나무를 위하여 신경림

어둠이 오는 것이 왜 두렵지 않으랴
불어닥치는 비바람이 왜 무섭지 않으랴
잎들 더러 썩고 떨어지는 어둠 속에서
가지들 휘고 꺾이는 비바람 속에서
보인다 꼭 잡은 너희들 작은 손들이
손을 타고 흐르는 숨죽인 흐느낌이
어둠과 비바람까지도 삭여서
더 단단히 뿌리와 몸통을 키운다면
너희 왜 모르랴 밝는 날 어깨와 가슴에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달게 되리라는 걸
산바람 바닷바람보다도 짓궂은 이웃들의
비웃음과 발길질이 더 아프고 서러워
산비알과 바위너설에서 목 움츠린 나무들아
다시 고개 들고 절로 터져나올 잎과 꽃으로
숲과 들판에 떼지어 설 나무들아

종점 권민경(수일고 2학년)

여태까지 내 인생의 종점은 수천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종점에서 내리지 못했던 것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 때문이었다
아직 세상은 따뜻하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낯선 행동을 하는 아이들에게

자물쇠가 철컥 열리는 순간 (조재도)

나에게도
자물쇠가 철컥 열리는 순간 같은
그런 때가 있어요
그러니 기다려 주세요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수십 번 넘어지고 일어나 다시 타도
또 넘어질 때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바퀴로 세상을 씽씽 달릴 때처럼
자물쇠가 철컥 열리는 순간이
있답니다

수영을 배울 때도
공부할 때도
바이올린을 켜거나
탁구를 칠 때도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넘지 못하던 벽을
어느 순간 훌쩍 뛰어넘는
그런 때가 있답니다

그러니 기다려 주세요
너무 재촉하지 말아 주세요
가을에 심은 나무는
봄이 되어야 꽃 피울 수 있잖아요

-조재도, 자물쇠가 철컥 열리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