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시 요약 한 번 해볼까? ====== ===== 함께 여는 국어교육 89호(2009년 9-10월호) ===== ==== 임창범 전북 전라고등학교 yimza@daum.net ==== ===== 모든 종류의 글을 요약 정리해보자 ===== 나는 모든 글을 요약한다. 시, 소설, 수필, 고전, 비문학, 심지어 CF까지 요약 정리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학기 초에 처음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내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하나의 예를 보여준다. 북어/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움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화자가 북어를 보면서 북어가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 무덤 속이 벙어리처럼 불쌍하다고 생각된 순간 북어들이 너도 북어지 하면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현대인에 대하여 비판하는 시인 것이다. 학생들은 시의 상징적 의미에만 너무 치우친 나머지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지 못한다. (굵은 글씨는 주어-사실은 동그라미로 처리한다, 밑줄은 서술어이다. 이처럼 주어, 목적어, 서술어의 구조를 가지면 글의 구조를 가장 기본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소설의 경우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아저씨하고 바람을 피는 불륜의 이야기로 생각한다. 그러나 왜 시점이 1인칭관찰자인지, 중심인물이 엄마이고 엄마의 사랑과 사회의 재혼에 대한 인식이 어머니의 순수한 사랑을 막았다고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그때야 수긍을 한다. 수필, 고전, 비문학도 마찬가지이다. ===== 2009년 힘겹게 요약을 하다 ===== 2009년 1월 후배 교사가 산휴로 쉬고 있는 동안 겨울방학 동안 보충수업을 대신해 주었다. 혹시라도 올해 나와 같이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기초부터 충실히 수업을 해 주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혹시 나하고 같이 올해 수업을 같이 해 볼 생각이 없냐고?’ 학생들은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싫다고.’ 나는 나중에 학생들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의 수업은 그냥 듣기만 하면 되는데 내 수업은 자기들이 하나씩 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싫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들을 데리고 2009년을 보내고 있다. 민족사관고 백춘현 선생님의 「민사고 논술 입문」이라는 책에 나오는 ‘요약은 정리와 해석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라는 명제를 토대로 학생들과 함께 시, 소설, 수필, 고전, 비문학, CF를 요약하면서 주제를 찾고 나를 발견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 나를 반성함 ===== 6차 국어교과서 홍대용의 「매헌에게 주는 글」을 가르치고 있을 때였다. 전날 모임이 있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수업을 하는 중 느낀 바가 있었다. 나는 매우 힘들게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수업을 하고 있었다. 햇살은 좋고 날은 쾌청하여 참 좋은 날씨였다. 학생들은 모두 정자세로 나를 바라보며 수업을 듣고 있었고, 나는 한 줄 한 줄 읽고 해석해가면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 순간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아, 얼마나 죽어 있는 수업인가? 살아있는 수업을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요약 정리 수업이었다. 학생과 같이 하는 수업. 학생들에게 시간을 주고 같이 한 문단, 한 연씩 같이 정리를 하다보면 즐거운 시간, 보람을 느끼는 수업을 만들 수 있었다. ===== 아이가 나를 가르침 ===== 이렇게 학생들에게 요약을 가르쳤지만 학생들은 그냥 요약만 하려고 하였다. 나는 요약(내꺼)을 통해 주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외쳤다. 어느 날 학생의 책을 점검하던 중 정말 예쁘게 정리된 내용을 보게 되었다. 예) 단군신화 * 내꺼 : 단군이 나라를 세운 이야기 * 주제 : 조선의 건국신화 이때부터 학생들과 같이 내꺼와 주제를 같이 쓰면서 내용을 확실하게 정리하게 되었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형식이 완전하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알려준 형식이지만 학생은 나에게 내 수업을 완성시킬 형식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 나를 발견하는 수업 ===== 학생들은 점점 자기주도적 수업을 싫어한다. 그냥 수업 잘하시는 선생님의 수업을 받고자 한다. 자기들이 직접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싫어한다. 교사는 수업도 잘해야 하지만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나’를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찬란한 유산」이 끝났다.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선우환이 받은 ‘찬란한 유산’이 무엇이냐고? 아이들은 한효주를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학생들은 본질적 가치를 보지 못하고 현실 속에 얽매이고 만다. ‘찬란한 유산’은 진정한 일의 가치, 가족의 소중함, 진실의 승리 등 우리가 평소 ‘돈’이라는 황금만능주의 속에 얽매여 잊고 지냈던 가치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다. 여기에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이청준의 「눈길」을 연결시켜 보았다. 「눈길」에서 나는 ‘노인’에게서 무엇을 받았는지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학생들은 그제야 ‘내’가 노인에게서 아무것도 못 받은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말을 한다. 수업은 지식만을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를 발견하는 수업이 되었을 때 우리는 교사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요즘 유행하는 ‘KT 올레’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효도편- 어머니가 받아쓰기 100점을 받은 이야기에는 아무런 감흥을 갖지 못한다. ‘당신을 위한 최고의 감탄사’라는 올레의 주제에 정말 충실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재미없어 하면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이들은 캠프편- 아이와 엄마가 캠프 갔을 때 남편의 ‘OLLEH'에 큰 웃음을 던진다. 이는 우리가 정말로 감동받아야 할 부분은 잊고 현실적인 것, 현세의 욕망에 너무 충실하다는 것이다. 요약은 단순히 정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약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 아이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 ===== 세상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학교라고 생각한다. 물론 변한 것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수업이 변하지 않고 있다. 내가 하루아침에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없다. 하지만 내 아이들만큼은 변하게 만들고 싶다. 지금도 아이들은 독후감을 쓸 때 줄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쓴 다음 ‘참 감동적이다’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곤 한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아이들이 줄거리는 ‘내꺼’를 만들듯이 1문장에서 3문장 정도로 가볍게 만들고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고 행동하는 아이가 이 사회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이 사회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진정한 열정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 ===== ‘기억에 남지 않는 교사가 되자.’ 내 좌우명이다. 학생들에게 기억에 남는 교사를 말하라하면 첫째, 때리는 선생님을 먼저 이야기한다. 둘째는 수업을 잘 못하시는 분의 예를 든다. 셋째는 가장 잘 가르치시는 선생님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나는 특별히 잘 가르친다는 생각도 가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여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기억에 남지 않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아이들과 힘차게 요약 정리를 하다 보면 아이들은 ‘지식’이 아닌 ‘배움’을 얻게 된다. 아이들은 잘 가르치는 선생님도 기억하지만 자기들을 누가 사랑하는지를 정확히 안다. 우리가 사는 이유도 단 한 가지.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에 계속 재직하는 동안 계속해서 ‘내꺼’를 만들고 싶다. * 임창범 선생님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오늘도 ‘내꺼’를 만들며 ‘나’를 찾는 국어수업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