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책 쓰기를 통한 시 읽기 교육 사례

함께 여는 국어 교육 85호(2009년 1~2월)

권혜령 부천 부일중학교 92chyrisan@hanmail.net

나는 오른쪽 어깨에는 여섯 살 큰애가, 왼쪽에는 네 살 둘째가 매달린 아줌마 교사이다. 육아휴직을 이 년 동안 하고 나서 복직한 지 이 년째 접어든다. 아이의 탄생과 더불어 엄마도 새롭게 태어난다. 아이라는 소중한 보물을 얻음과 동시에 엄마의 개인적인 욕망은 사라져야 한다. 뮤지컬이나 공연, 영화를 보기는커녕 텔레비전 드라마 한 편을 지속적으로 볼 수도 없고, 뉴스 한 토막조차 얻어듣기도 어렵다. 이런 나날이 계속되면서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소통의 창구로 열려 있던 매체가 닫혀 버렸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과 소통의 창구로 삼은 것이 시이다. 지난 9월에는 시인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시 수업에 어떤 상상력을 얻으려고 두 아이를 이리저리 맡기고 경기국어교사모임에서 준비한 ‘열정 문학강좌’를 들으러 안산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나는 시 읽기, 시 느끼기, 시 창작을 해 보는 수업 과정 없이 시화전이 있을 때면 의례적으로 시를 지어오라는 말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시화전이 있거나 시 단원을 공부할 때 시 창작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것은 시간이 없다는 현실적인 조건도 있지만, 즐거운 창작이 아닌 괴로운 창작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먼저 좋은 시를 많이 읽으면서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게 하고 싶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수업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도, 성공적인 모범 사례도 아니다. 다만, 사지선다형의 문제 풀이를 위한 시 읽기가 아니라 가슴으로 시 읽기를 위한, 한 교사의 기록일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창작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시 공부에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하나. 시 공책 쓰기라는 수행평가를 기획한 이유

교육에도 유행이 있다. 지금은 논술이 유행하는 시기이다. 논술을 위한 독서․토론 수업도 많다. 물론 이것이 고등사고능력을 위해 필요한 줄은 알지만, 자신이 읽은 글의 중심내용도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논술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작년에는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과 문학 수업을 하였다. 학생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문학 갈래는 다름 아닌 시였다. 모의고사를 볼 때 시는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글귀가 있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다르리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사랑하기 전에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시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맛을 알고 나면 사랑하게 되고 시가 다르게 보인다.

시를 알지도 못하는데 사랑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와 친해지려면 시를 먼저 읽어야 한다. 황지우 시인의 말씀대로 ‘밑줄 치고 분석하는 게 아니라 시를 통으로 읽혀야 한다.’ 그러나 이 시를 읽고 네 느낌은 어떠냐를 물어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시를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시에 나타난 시어들을 통해서 시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해 중학교로 오면서 뭘 해볼 것인가를 구상하다가 작년 고등학교 2학년생들과 해 본 시공책 쓰기를 다시 해 보기로 했다. 작년 아이들은 시공책 쓰기를 수행평가라는 틀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교사를 즐겁게 해 줄 만큼 성실히 쓰는 녀석이 있었고, 두드러진 시 해석을 해오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러나 시를 스스로 즐기는 수준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다시 작년의 모자람을 채워가면서 해 보기로 했다. 1학기에는 국어 시간마다 3분 말하기를, 2학기에는 작은 책 만들기를 하고, 1, 2학기 공통으로 시공책 쓰기를 하기로 했다. 중학교 3학년 6개 반, 219명의 아이와 시공책 쓰기에 도전했다.

학생들에게는 ‘시를 많이 읽자, 시를 읽는 방법을 알자, 자신의 눈으로 시를 읽자.’라는 세 가지의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교사로서의 나의 목표를 몇 가지 세웠다. 첫째는 학생 지도를 개별화하는 것이었다. 교사가 어떤 과제를 내더라도 잘 따라오는 2%의 아이들이 아니라 나와 만난 아이들이 모두 시 해석을 해낼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일회적인 시 해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지도를 통해 자신의 시 해석을 다시 점검해보게 하고 싶었다.

둘째는 과정을 중시하자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처음 본 시를 멋지게 해석해내기보다 한 구절 한 구절, 시어 하나하나에서 시 전체의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느끼게 해 주자는 것이었다. 이 두 문제가 가장 관건이었다. 시 공책을 내라고 해도 안 내는데 한 사람 한 사람 다시 내는 것까지 일일이 검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쓴 방법이 ‘잘했다상’과 ‘찜’이었다. 시 해석을 잘하면 예쁜 도장을 찍어주고 이 도장 10개를 모으면 문화상품권을 주는 것이다. 시 해석 뿐만 아니라 공부시간에 학습지 활동이나 그날 공부시간 일기를 잘 써도 잘했다 도장을 찍어주었다. 자신의 부족한 해석을 스스로 다시 하게 하는 도전과제를 만들려고 문화상품권이라는 구체적인 동기유인책을 썼다. 물론 이런 외적 동기는 한계가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내적 동기이다. 그러나 ‘시를 해석하고 감상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라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는 큰 동기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더 가시적인 목표가 필요했다. 반대로 공부시간에 졸거나 딴 짓을 하면 ‘찜’을 주고 이 찜이 3번 쌓이면 친구들 앞에서 대중가요를 부르는 벌칙을 받아야 했다. 2학기부터는 시 공책을 제 날짜에 안 내면 찜을 받도록 해서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후다닥 시 해석을 써 냈다.

셋째는 친구의 시 해석을 돌려보면서 상호작용하는 것이었다. 시 공책을 두 달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은 어느 정도 시 해석을 하기 시작했고, 눈에 띄는 작품들도 많아졌다. 그래서 다른 반 친구들의 시 해석까지 모아 시 해석이 잘된 것 여섯 편을 색지에 뽑아 마음에 드는 시 해석을 골라 읽힌 다음, 자신의 시 해석과 다른 점을 생각해 보게 했다. 그리고 시에 나온 시어나 구절을 꼼꼼히 해석하는 것이 좋은 시 해석의 방법임을 강조했다. 그런 다음 친구의 시 해석을 자신의 시 공책에 붙이고 참고하게 했다. 1학기가 끝난 다음 시 공책을 서로 돌려가면서 읽고 평가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으나 이는 시도하지 못했다. 다만, 자주 친구의 시 해석을 같은 방법으로 읽게 했다.

둘. 시 공책 쓰기의 과정

새 학년이 된 아이들과 첫 만남 때 1학기 수업 계획을 소개하면서 시작해서 수행평가까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인 시 공책 쓰기를 안내하면서 본격적으로 출발한다. 먼저 시 읽기 길라잡이를 칠판에 써 주고 준비해온 국어공책을 시 공책으로 만들게 해서 공책 표지 안쪽에다 길라잡이를 적어두도록 했다.

< 시 읽기의 길라잡이>

  1. 말하는 이는 누구이며,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2. 말하는 이가 관심을 두고 바라보는 것(대상)은?
  3. 말하는 이의 정서는 어떠한가?
  4. 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이나 구절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5. 결국,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6. 이와 비슷한 나의 경험을 적어보자.

그리고 공책을 세로로 반을 접고 교과서에 있는 시 가운데 자신의 마음에 드는 시를 한 편 왼쪽에다 그대로 베껴 쓰도록 했다. 그다음부터 오른쪽에다 길라잡이에 있는 내용을 찾아보도록 하고 그것을 하나의 문장으로 써서 이어가게 했다. 다 쓴 사람은 먼저 교사의 지도를 받게 했고, 한 시간이 지나면 공책을 다 걷어서 교사가 읽어보고 나서 도움말을 적어주었다. 그리고 다른 학생의 시 해석을 본보기로 읽어주고 왜 이 해석이 잘 되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첫 시간과 둘째 시간에 이런 다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반별로 요일을 정해서 내기로 했다. 요일별로 각 반의 시 공책을 일일이 읽어보면서 아이들이 처음 시를 접했을 때 읽지 못한 내용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거나 잘못 읽은 사항을 짚어주었다. 그리고 고쳐서 다시 제출하게 하는 과정을 3,4월에 진행했다.

시 공책에 쓸 시는 각자가 고르게 했다. 수준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므로 가장 끌리는 시를 골라 해석하게끔 했다. 1단계는 교과서에 실린 시를 골라서 해석하기로 했다. 먼저 자신이 해석한 다음에 공부 시간에 교사의 설명을 들어서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하면서 시를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 수업 시간에 해당 시를 쓴 학생 가운데 독창적이거나 우수한 시 해석을 읽어주었다. 다행히 1단원이 시 단원이어서 앞으로 해나갈 시 해석 쓰기 방식을 선보일 수 있었다. 2단계는 자신이 도서관이나 인터넷에서 찾은 시를 해석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원태연이나 이정하 같은 시인들의 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경우 교과서에서 비슷한 소재를 다룬 시를 비교하여 두 편의 시 가운데 같은 대상을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를 비교하게 했고 어떤 시가 더 깊은맛을 내게 했는지를 생각해 보게 했다. 2단계가 되자 아이들은 쓸 시가 없다고 야단들이었다.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면서 교사가 인쇄물을 만들어 여러 편의 시를 주고 자신의 마음에 든 시를 골라 해석하기였다. 인터넷에서 해석을 베끼거나 할 경우는 불러서 다시 그 의미를 말해보라고 하면 대개는 말하지 못해서 다음부터는 이런 행동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처음 계획을 짤 때는 성실하게 시 공책을 써 내는지, 부족한 시 해석을 보충해 나가는지, 시 해석 내용의 질이 높은지를 평가하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번도 빠짐없이 시 공책을 열심히 써 낸 아이들은 최고점을 주었다.

셋. 시 공책 쓰기의 실제

1학기 첫 단원에 시작한 시 수업에서도 아이들이 시 해석을 하는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시 속의 화자를 찾는 것에서 시작해서 시 길라잡이를 채워갔다. 그러면서 시에서 중요하게 쓰인 시어와 제목과의 관련성을 생각해보는 질문을 추가한 학습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를 선택한 아이의 시 해석을 읽어주거나 부분을 인용해서 말해주면 훨씬 아이들이 가까이 느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는 바로 짧은 시였다. 아이들은 공책에 베껴 적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황지우의 ‘묵념 5분 27초’라는 시를 찾아냈고,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를, 김용택의 ‘첫눈’을 찾아왔다. 고정희의 ‘고백’과 김용택의 ‘이 바쁜 때 웬 설사’도 인기가 있었다. 게다가 어떤 녀석들은 시조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보이기까지 해서 연속 5회는 곤란하다는 경고를 하기도 했다. 외국 시인도 가리지 않는 대담함도 보였다.

시 해석에서 아이들은 우선 시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 시어 하나하나가 짧은 시 전체를 이루고 있는데 그 시어들을 생각하지 않고 직관적으로만 읽으려고 했다. 인상 깊은 구절은 그냥 마음에 든다는 식으로 이유를 밝혔다. 또한, 지식으로 접근하려 한 점을 발견했다. 교과서에 실린 시를 해석하면서 배웠던 사회 역사적 접근을 쉽게 하려 했다. 한하운의 ‘파랑새’를 보면서도 일제 강점기 자유를 억압당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시 자체에서 우선 해석하기를 요구했다.

2학기에 들어와서 생활국어 2단원 문장 성분에 대해 배울 때는 시를 예로 들어 보았다. 전봉건의 ‘피아노’를 색지에 인쇄해서 코팅한 다음 뒷면에 자석을 붙여 칠판에 붙여두었다. 첫 번째 과제는 시 전문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시 전문을 완성한 다음에 두 번째 과제는 시에서 의미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성분과 없는 성분을 남기거나 빼는 것을 해 보았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재밌게 느꼈고, 필수성분만 남겨놓으니 시의 중심의미가 전달되어 의미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었다.

세 반에서 전봉건의 ‘피아노’ 시를 선택한 총 49명의 학생 가운데 일차적 읽기를 못한 학생은 13명, 일차적 읽기에 성공한 사람은 27명, 이차적 읽기를 한 사람은 5명이었다. 시 해석을 하지 않고 모방시만 쓴 사람이 4명이었다. 이 가운데 다시 생각해서 고쳐온 학생은 모두 일차적 읽기에 성공했다.

  • 말하는 이는 피아노 치는 여자이며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걸 보고 있고 피아노를 치며 바다를 회상하고 있다. 이 여자는 물고기 잡는 상상을 하며 왠지 시퍼런 칼날을 들었다니 무섭고 극단적인 성격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구절이 제일 인상깊었다. 시퍼런 칼날을 들다니….. 왠지 잔인하고 무섭다. 이 시에서는 피아노를 치며 상상하는 기분을 나타내고 있다. <도영>
  • 피아노를 치고 있는 사람이 화자이며 신나게 피아노를 치고 있다. 인상깊은 구절은 ‘나는~집어들었다’이고 피아노를 치면서 바다를 떠올니는 모습을 말하고 있는 듯해서이다.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걸 말하려 하고 있는 듯하다. <이석>
  • 말하는 이는 피아노 연주를 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관심을 두고 보는 것은 피아노이다. 이 시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튀는 꼬리’(의) 뜻이 음표라는 것이다. 결국,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악기를 사랑하자(이다). 이 시와 비슷한 경험은 아직은 없다. <정현>
  • 말하는 이는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여인이다. 피아노를 치면서 신나하고 있으며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피아노를 칠 때마다 울려 퍼지는 소리를 물고기가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지고 있다고 비유하고 있다. <하연>

짧아서 많이 해석한 이 시는 일차적 읽기에서 많은 아이가 실패한다. 우선 시적 화자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피아노에 앉은 여자’와 ‘나’가 같은 사람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공책에 표시해 주었다. 그리고 ‘왜 피아노 소리를 물고기라고 했을까?’, ‘피아노를 치다가 왜 바다가 떠올랐을까?’를 생각해보자고 표시해 주었다.

  • 이 시에서 말하는 이는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여자를 보고 있는 사람이다. 말하는 이는 피아노를 치는 손이 빨라서 열 개의 손이 스무 개의 손가락처럼 보인다고 한 것 같다. 그리고 신선한 물고기는 피아노의 음에 비유한 것 같다. 말하는 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은 피아노의 소리이고 파도의 칼날은 바이올린의 활을 들고 피아노 연주에 맞춰서 바이올린을 켜는 것 같다.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이라는 구절이 마음에 든다. 이유는 피아노를 빨리 치는 손가락을 비유한 것이 새로워서이다. <소영>
  • 이 시에서 말하는 이는 지금 여자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걸 보고 있다.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거 역시 피아노 또는 피아노 연주 같다. 말하는 이의 심리나 감성은 '즐거워'하는 거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지만 피아노 연주를 ‘기분 좋게' 감상하고 있는 거 같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은 표현은 피아노를 바다로 표현하였다는 것이다. 이 시를 보면서 바다의 물결은 악보의 ‘오선'으로, 여자의 두 손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물고기들은 여자의 두 손에서 끊임없이 연주되는 '음표'로 그리고 ‘나'가 가장 신나게 파도의 칼날을 집어든 건 연주의 ‘클라이막스', 그 연주의 절정 부분이 생각났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피아노는 좋은 것이다.'라는 거와 비슷한 거 같은데.. 흐음… 이 시와 비슷한 나의 경험은 피아노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있기 때문에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한진>

한진이에게는 왜 피아노를 바다에 비유했을지, 또 바다는 무엇을 뜻하는지, 주제를 더 생각해보게 했다. 이에 대해 한진이는 아래와 같이 생각을 이어나갔다.

  • 1. 바다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물들, 그 끊임없는 생명력과 피아노가 닮아서가 아닐까? 고기를 낚을 때도 매번 다른 고기가 낚이듯, 피아노도 곡을 칠 때마다 다른 곡들이 흘러나오니까.
  • 2. 피아노 소리가 울리는 것이 물고기의 퍼덕거림과 비슷한 것일까? 힘찬 피아노 소리가 마치 물고기의 생명력과 비슷한 것일까?

2학기 수행평가 과제인 작은 책 만들기와 시 공책을 연계하기도 했다.

다양한 주제로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 작은 책 만들기 과제였는데 시 공책에서 쓴 시 해석을 바탕으로 작은 책에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적고 해석하는 아이들이 한 반에서 5명 정도씩 생겼다. 그래서 하나의 시집처럼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가운데 교과서의 시를 바탕으로 작은 책에다 만화를 그린 아이도 있었다.

또 2학기에 들어와서는 모방시 쓰기, 자신이 좋아하는 대중가요를 시 공책에 쓰고 해석하기, 자신이 쓴 시와 비슷한 대중가요 찾기, 시를 소설로 쓰기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기도 했다. 진도에 떠밀려 수업시간에 하지 못한 것을 시 공책에다 쓰도록 한 적도 있었다. 예를 들면 2학기 1단원 ‘성탄제’ 수업 후 아버지와 관련된 노래를 찾고 그 노래를 해석해오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0월에 같은 모임의 송여주 선생님의 수업 사례를 통해 사진을 활용해 새로운 시 창작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11월부터는 그것을 아이들과 같이 해 보고 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시를 쓰는 것과 닮은 점이 많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면서 대상에 대해 관찰하고, 그 찍는 순간에 담으려고 한 메시지를 시로 써 보게 하였다. 예를 들면, ‘가족’, ‘친구’, ‘행복’이라는 세 개의 제재로 시를 쓰려고 할 때, 그 구체적인 제재를 정해서 사진으로 찍고 관찰하면서 대상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넷. 시 공책에 대한 아이들의 평가와 남은 문제들

고등학생과 달리 중학생은 교사가 어떤 지도를 할 때 참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시 공책을 검사할 때마다 교사를 놀라게 하는 기쁨조가 있는가 하면 쫓아다니며 시 공책을 쓰자고 조르고 기다리고, 야단치고 또 기다리고, 설득하고 그러다 강제로 남겨서 쓰게 한 ‘몸부림스’가 있었다. 한 녀석은 어머니와 상담까지 한 뒤 매까지 들어야 했다. 이 아이들은 시 공책의 과제가 과연 합당한가, 어디까지 교사가 할 수 있는가를 늘 묻게 하는 존재들이었다.

사실 주당 24시간 수업에 국어과 모든 업무를 맡은 비담임으로, 일주일에 여섯 반의 시 공책을 일일이 다 검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법만 가르쳐주면 되지 이렇게 굳이 써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쌓이는 시 공책을 읽어보는 것보다 오히려 시 공책을 안 내는 녀석을 따라다니는 게 더 힘이 들었다. 아이들은 무조건 의욕이 없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시키니까 하는 대강 하는 척만 하는 아이, 별로 이 과제에 대해 그 효과를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수업 후에 남겨서 쓰게 하거나, 시 해석을 할 줄 몰라 안 내는 녀석들을 시를 베껴오게 한 다음 묻고 답하면서 같이 해석하면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런 아이를 불러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나면 조금 나아지기도 했다. 내내 써 내는 척만 하다가 어느 순간 ‘담쟁이’를 멋지게 해석해서 놀라게 하던 남덕이, 학교를 오다가다 하는 경환이의 시 해석,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은 동민이가 ‘잘했다상’을 받았다고 좋아하면서 지금은 8개까지 모을 정도로 실력이 는 것을 보면 뿌듯해진다. 조금씩 늘어가는 아이들의 싱싱한 시 해석은 나를 감동시켰고, 재미가 있었다. 공부시간에는 아무런 말도 않는 무표정의 슬기는 남학생들이 다섯 줄에 대강 해치우는 시 공책을 낼 때마다 두 바닥에 걸쳐 시 해석을 해오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시를 얘기하는 나에게 삶을 이야기해 오기도 했다. 윤동주의 ‘서시’를 해석하면서 촛불시위에 대한 생각을 공책 두 바닥에 걸쳐 써 오는가 하면, 자기의 꿈을 위해 지금 뭘 할 수 있는가를 물어오기도 했다. 시 대신에 ‘청춘예찬’의 글을 배우고는 그 수필의 한 구절을 베껴 적고는 이 수필에 대한 비판적인 자신의 생각을 적어오기도 했다. 쉬는 시간이면 공책을 들고 찾아오는 녀석들 덕분에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잘했다상’이 8~9개인 녀석들이 문화상품권이 탐나서 옛날에 썼던 시를 다시 고쳐오는 경우이다. 하루에 서너 번을 찾아온 녀석도 있었다. 그리고 시집을 제 손으로 사서 선생님한테 자랑하는 녀석도 생겨났다.

11월에는 기말고사를 앞둔 아이들에게 시 공책 쓰기에 대한 평가서를 받았다. 이름을 적어도 되고, 안 적어도 된다고 한 이 평가서 가운데에 ‘내년 3학년에게 시 공책 수행평가를 계속 해도 될까?’를 묻는 문항이 있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한 반에 2~3명 정도 학생이 반대했으니 비교적 후한 평가를 받은 셈이다.

  • 시 공책이 좋아요. 저는 긴 시간 동안 조금이나마 선생님과 이야기할 수도 있는 방법이고 진지하게 시 공책에 임해 준다면 좋은 경험이 되어 줄 것 같아요. <소영>
  • 계속해야 한다. 시 해석 능력도 좋아지는 것 같고 시와 어색한 사람은 시 공책을 쓰면서 시와 친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내년에 3학년이 될 애들은 시 공책을 일주일에 3번 쓰는 게 시와 더 친해질 테니까 좋을 것 같다. <재은>
  • 딱 시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우울한 시, 이런 거 밖에는 생각이 안 났는데 시 공책을 쓰면서 재밌는 시도 많다는 걸 알았다. <동민>
  • 보통은 시를 잘 보지 않고 넘어가지만 이제는 시를 보면 상황을 생각하고 해석하게 된다. 시가 쉽게 느껴진다. <이름 없음>
  • 시 공책은 평소 생활 습관 같기도 하다. <이름 없음>
  • 잠깐 준비해서 그날 하고 마치는 평가보다는 꾸준함을 알 수 있는 시 공책 해석이 좋다. <이름 없음>
  • 조금 귀찮은데 하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름 없음>
  • 시를 예전엔 아무것도 몰랐지만 지금은 해석이 되니까 시를 읽으면 재밌다. <이름 없음>
  • 시 공책은 매우 좋은 수행평가이다. 실력 차이를 떠나서 다른 수행 평가와는 달리 성실히 꾸준히 쓰는 것이 만점의 기준이고, 단지 평가라는 목적만이 아닌 시 공책을 통해 시를 알거나 시 해석 실력을 늘려가기 때문에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정원>
  • 점수도 적은데 일주일에 한 번씩 수행평가로 시키는 건 힘든 일이다. 내년 3학년은 안 했으면…..<형석>
  • 이런 수행평가는 정말 짜증 난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고통을 준다. 너무 힘들다. <이름 없음>

이렇게 올 한 해를 시를 가지고 뒹구는 동안 아이들은 다양한 시들을 맛보았다. 시 공책을 통한 시 읽기의 결과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이 수행평가를 통해 아이들이 시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지 알고, 시인이라는 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나중에 자신의 언어로 시를 쓸 수 있으면 하고 바란다. 굳이 시를 쓰지 않더라도 시집 하나 사서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시 공책 쓰기에 대해 정리를 하는 지금은 중학교 3학년 내신 성적에 반영되는 중간고사가 지나고 나서 한 달이 지난 때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전히 시 공책을 쓰고 있다. 12월에 고입 평가가 끝나면 이미 예고했던 것과 같이 아이들과 그동안 했던 시 공책과 국어 시간 일기, 작은 책을 함께 묶어 한 권의 문집으로 엮는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