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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머털도사의시쓰기지도 [2020/02/01 17:42]
211.219.188.31 [3) 중학교 시기의 특수성과 시 이해의 방향]
시:머털도사의시쓰기지도 [2020/02/01 17:53] (현재)
211.219.1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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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영영사전  +  영영사전  
- +  -이명종(회인중 1) 
--이명종(회인중 1) +   
- +  나는 똑똑하다. 
- +  그래서 인지 인기가 없다. 
- +   
-나는 똑똑하다. +  는 두껍다. 
- +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어려워한다. 
-그래서 인지 인기가 없다. +   
- +  나는 어둡다. 
- +  항상 구석진 어두운 자리에 있다. 
- +   
-는 두껍다. +  나는 단지 
- +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인지 사람들은 나를 어려워한다. +  하지만 사람들은 날 싫어한다. 
- +   
- +  항상 슬픈 나는… 
- +  영영사전이다.
-나는 어둡다. +
- +
-항상 구석진 어두운 자리에 있다. +
- +
- +
- +
-나는 단지 +
- +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
- +
-하지만 사람들은 날 싫어한다. +
- +
- +
- +
-항상 슬픈 나는… +
- +
-영영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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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  ​소망 
- +  -장미(내북중 3) 
--장미(내북중 3) +   
- +  저 깊은 
- +  숲 속을 걷다가 
- +  발걸음을 멈추고 
-저 깊은 +   
- +  이리저리 
-숲 속을 걷다가 +  미처 보지 못했던 곳까지 
- +  바라본다. 
-발걸음을 멈추고 +   
- +  바라보지 못했던 곳에는 
- +  작은 꽃이 
- +  열매를 맺는다.
-이리저리 +
- +
-미처 보지 못했던 곳까지 +
- +
-바라본다. +
- +
- +
- +
-바라보지 못했던 곳에는 +
- +
-작은 꽃이 +
- +
-열매를 맺는다. +
- +
  
  이 학생은 국어 시간에 함께 뒷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는 제가 시를 써보자고 하는 강요에 못 이겨서 이 시를 썼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면 대번에 느껴지겠지만,​ 뭔가 끄트머리에 할 얘기를 하다 만 듯한 느낌이 남습니다. 서둘러 마친 것이죠. 그래서 제가 한 마디 했습니다.  이 학생은 국어 시간에 함께 뒷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는 제가 시를 써보자고 하는 강요에 못 이겨서 이 시를 썼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면 대번에 느껴지겠지만,​ 뭔가 끄트머리에 할 얘기를 하다 만 듯한 느낌이 남습니다. 서둘러 마친 것이죠. 그래서 제가 한 마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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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열매 속에는 
-그 열매 속에는 +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 +  작은 소망들이 담겨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
- +
-작은 소망들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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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강아지 ​
 +  -배형준(내북중 2)
 +  ​
 +  얼마 전 태어난
 +  새끼 강아지
 +  ​
 +  9마리의 강아지가
 +  와글와글 북적북적
 +  ​
 +  젖 달라고 우는 소리
 +  깨갱깨갱
 +  ​
 +  제일 귀여운 새끼 강아지
 +  쓰다듬어 주고 만져주는데
 +  ​
 +  내 손가락을 쪽쪽 빤다.
 +  간지러운 가운데 손가락
 +  ​
 +  그러다 내 손가락 깨물면
 +  한 대 때려준다.
 +  ​
 +  9마리의 귀여운 ​
 +  새끼 강아지.
  
-강아지 ​ 
- 
--배형준(내북중 2) 
- 
- 
- 
-얼마 전 태어난 
- 
-새끼 강아지 
- 
- 
- 
-9마리의 강아지가 
- 
-와글와글 북적북적 
- 
- 
- 
-젖 달라고 우는 소리 
- 
-깨갱깨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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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 귀여운 새끼 강아지 
- 
-쓰다듬어 주고 만져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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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가락을 쪽쪽 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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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러운 가운데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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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내 손가락 깨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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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 때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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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마리의 귀여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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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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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밥 한 숟가락, 잠 한 바가지 
- 
--강혜지(회인중 1) 
- 
- 
- 
-밥 한 숟가락 
- 
-“냠냠” 
- 
-잠이 한 바가지. 
- 
- 
- 
-밥 두 숟가락 
- 
-“쩝쩝” 
- 
-잠이 두 바가지. 
- 
- 
- 
-밥 한 공기 
- 
-“꿀꺽” 
- 
-잠에 묻혀 눈꺼풀이 스르륵. 
  
  
  
 +  ​
 +  밥 한 숟가락, 잠 한 바가지
 +  -강혜지(회인중 1)
 +  ​
 +  밥 한 숟가락
 +  “냠냠”
 +  잠이 한 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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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 두 숟가락
 +  “쩝쩝”
 +  잠이 두 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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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 한 공기
 +  “꿀꺽”
 +  잠에 묻혀 눈꺼풀이 스르륵.
 +  ​
  ​너무 깔끔하게 묘사되어서 시가 전하고자 하는 상황이 아주 잘 와 닿습니다. 이와 같이 이미지만으로도 시는 훌륭하게 이루어집니다. 이런 시에서는 정경만 잘 나타나기 때문에 별로 추가할 말이 없지만, 이미지만으로 써오는 시에 주제를 다시 덧보태오라는 주문을 하면 시로서는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시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특별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깔끔하게 묘사되어서 시가 전하고자 하는 상황이 아주 잘 와 닿습니다. 이와 같이 이미지만으로도 시는 훌륭하게 이루어집니다. 이런 시에서는 정경만 잘 나타나기 때문에 별로 추가할 말이 없지만, 이미지만으로 써오는 시에 주제를 다시 덧보태오라는 주문을 하면 시로서는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시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특별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줄 549: 줄 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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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840: 줄 768:
  ​전에 교원연수에 침뜸 과정이 있어서 침뜸을 배운 후로는 몸이 불편하다는 아이들이 있으면 침을 놔주곤 했습니다. 시를 쓰라고 했더니, 귀찮다면서 쓸 게 없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래서 그러면 ‘정 쓸 게 없는 놈들은 침놓는 선생님에 대해라도 써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전에 교원연수에 침뜸 과정이 있어서 침뜸을 배운 후로는 몸이 불편하다는 아이들이 있으면 침을 놔주곤 했습니다. 시를 쓰라고 했더니, 귀찮다면서 쓸 게 없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래서 그러면 ‘정 쓸 게 없는 놈들은 침놓는 선생님에 대해라도 써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  
- 
-침을 놓는 국어 선생님 
- 
--김민규(회인중 2) 
  
 +  침을 놓는 국어 선생님
 +  김민규(회인중 2)
 +  ​
 +  국어 시간이면
 +  재미있게 놀던 친구들이
 +  아프다고 하며
 +  침을 맞는다.
 +   
 +  한 손에 침을 든 국어 선생님
 +  다른 한 손으로 톡톡 치면서
 +  침을 살로 집어넣는다.
 +  ​
 +  약간 차가운 침이
 +  내 몸속으로 들어오면
 +  차가운 기운이
 +  내 몸을 돌아다닌다.
 +   
 +  침을 뽑을 때는
 +  아픈 곳이 나아
 +  기분이 좋지만
 +  ​
 +  왜 이렇게 피가 나는지
 +  국어 선생님의 실력이
 +  의심스럽기만 하다.
 +  ​
    
- 
-국어 시간이면 
- 
-재미있게 놀던 친구들이 
- 
-아프다고 하며 
- 
-침을 맞는다. 
  
    
  
-한 손에 ​침을 ​든 국어 선생님+  정화타 
 +  -이욱재(회인중 2) 
 +    
 +  정화타 
 +  ​침을 ​놓으신다. 
 +  말로는 
 +  침은 만병통치약 
 +  그럼 사람은 왜 죽나요?​ 
 +  정화타 
 +  면허증 없는 불법시술 
 +  내 발목 
 +  안 낫는 이유 
 +  아무 데나 놓는 침 
 +  찌릿할 때까지 
 +  쑤시는 침 
 +  쑤시다 쑤시다 
 +  내 다리 
 +  벌집 되겠네. 
 +  정화타 
 +  돌팔이. 
 +  ​
  
-다른 한 손으로 톡톡 치면서 
- 
-침을 살로 집어넣는다. 
- 
-  
- 
-약간 차가운 침이 
- 
-내 몸속으로 들어오면 
- 
-차가운 기운이 
- 
-내 몸을 돌아다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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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을 뽑을 때는 
- 
-아픈 곳이 나아 
- 
-기분이 좋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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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렇게 피가 나는지 
- 
-국어 선생님의 실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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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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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화타 
- 
--이욱재(회인중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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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타 
- 
-침을 놓으신다. 
- 
-말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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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은 만병통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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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사람은 왜 죽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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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타 
- 
-면허증 없는 불법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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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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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낫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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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데나 놓는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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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릿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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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시는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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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시다 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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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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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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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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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이. 
- 
-  
- 
-침 한 방으로 
- 
--유지환(회인중 2) 
- 
-  
- 
-국어선생님의 
- 
-침 한 방으로 
- 
-창섭이의 여자친구와 헤어진 고통도 치유되고 
- 
-  
- 
-국어선생님의 
- 
-침 한 방으로 
- 
-민규의 어젯밤에 먹다만 빵을 흘린 고통도 치유되고 
- 
-  
- 
-국어선생님의 
- 
-침 한 방으로 
- 
-지환이의 소녀 팬이 보내준 편지 읽느라 
- 
-고생한 고된 피로도 치유되고 
- 
-  
- 
-치유되지 않는 게 없는 
- 
-국어선생님의 침 
- 
-  
  
 +  침 한 방으로
 +  -유지환(회인중 2)
 +   
 +  국어선생님의
 +  침 한 방으로
 +  창섭이의 여자친구와 헤어진 고통도 치유되고
 +   
 +  국어선생님의
 +  침 한 방으로
 +  민규의 어젯밤에 먹다만 빵을 흘린 고통도 치유되고
 +   
 +  국어선생님의
 +  침 한 방으로
 +  지환이의 소녀 팬이 보내준 편지 읽느라
 +  고생한 고된 피로도 치유되고
 +  ​
 +  치유되지 않는 게 없는
 +  국어선생님의 침
 +   
  ​침에 대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침에 대해 이렇게 재미있게 시를 쓰는 것은, 자신들이 직접 보고 겪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체험이 있기 때문에 그 체험 부분을 있는 그대로 살려내는 것입니다.  ​침에 대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침에 대해 이렇게 재미있게 시를 쓰는 것은, 자신들이 직접 보고 겪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체험이 있기 때문에 그 체험 부분을 있는 그대로 살려내는 것입니다.
  
줄 1005: 줄 871:
    
  ​강의식 수업은 졸음을 유도합니다. 자연히 그런 방식에 익숙한 아이들은 지겨움을 달래려고 별짓을 다 합니다. 대개 수업을 하지 않고 자유 시간을 달라거나,​ 아니면 좀 더 편한 수업을 하기를 원하고, 그것도 아니면 짧은 시간 내에 무언가를 하고 나머지를 자유 시간으로 얻으려는 꾀를 씁니다. 그러면 적당히 모른 척하고 속아줍니다. 예를 들면 시를 쓸 시간을 10분 주고 나머지 시간을 그 발표를 듣는 방식이죠. 그러면 한 학생이 발표하는 동안 다른 학생은 그 발표를 듣거나 엉뚱한 생각을 하거나 다른 짓을 할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면 시 쓰는 시간은 불과 5분이 채 안 걸립니다. 나머지 시간은 모른 척하고 그렇게 때우게 해줍니다.  ​강의식 수업은 졸음을 유도합니다. 자연히 그런 방식에 익숙한 아이들은 지겨움을 달래려고 별짓을 다 합니다. 대개 수업을 하지 않고 자유 시간을 달라거나,​ 아니면 좀 더 편한 수업을 하기를 원하고, 그것도 아니면 짧은 시간 내에 무언가를 하고 나머지를 자유 시간으로 얻으려는 꾀를 씁니다. 그러면 적당히 모른 척하고 속아줍니다. 예를 들면 시를 쓸 시간을 10분 주고 나머지 시간을 그 발표를 듣는 방식이죠. 그러면 한 학생이 발표하는 동안 다른 학생은 그 발표를 듣거나 엉뚱한 생각을 하거나 다른 짓을 할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면 시 쓰는 시간은 불과 5분이 채 안 걸립니다. 나머지 시간은 모른 척하고 그렇게 때우게 해줍니다.
 +
  ​제가 지금 근무하는 회인중학교 옆에는 오장환 문학관이 있습니다. 담장이 없어 메마른 도랑을 넘어가면 바로 문학관입니다. 볕 좋은 가을에 오장환이 살던 집의 마루에 걸터앉아서 시를 쓰라고 하면 아이들은 시 쓸 생각은 않고 장난만 칩니다. 그냥 둡니다. 시는 5분이면 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장난치게 두어도 다음 시간에 시를 발표시키면 남들이 발표하는 동안에 시 한 편을 뚝딱 써버립니다. 그렇게 벼락치기로 써도 명작이 나오는 갈래가 시입니다.  ​제가 지금 근무하는 회인중학교 옆에는 오장환 문학관이 있습니다. 담장이 없어 메마른 도랑을 넘어가면 바로 문학관입니다. 볕 좋은 가을에 오장환이 살던 집의 마루에 걸터앉아서 시를 쓰라고 하면 아이들은 시 쓸 생각은 않고 장난만 칩니다. 그냥 둡니다. 시는 5분이면 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장난치게 두어도 다음 시간에 시를 발표시키면 남들이 발표하는 동안에 시 한 편을 뚝딱 써버립니다. 그렇게 벼락치기로 써도 명작이 나오는 갈래가 시입니다.
 +
  ​실제로 국어책에는 시가 꼭 나옵니다. 그 단원을 배우면서 학생들이 읽을 만한 좋은 시를 인터넷에서 보여주든가 아니면 복사해서 나눠주고 읽게 하면 그런 시에 실린 발상법을 금방 배워서 활용합니다. 아이들 생각의 말랑말랑함은 어른들하고는 다릅니다.  ​실제로 국어책에는 시가 꼭 나옵니다. 그 단원을 배우면서 학생들이 읽을 만한 좋은 시를 인터넷에서 보여주든가 아니면 복사해서 나눠주고 읽게 하면 그런 시에 실린 발상법을 금방 배워서 활용합니다. 아이들 생각의 말랑말랑함은 어른들하고는 다릅니다.
 그리고 시를 배우는 단원에서는 반드시 학생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갑니다. 그래서 뒷산을 한 바퀴 돌고 오면 기분전환도 되고 그런 기분전환이 시를 쓰는 흥취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시를 배우는 단원에서는 반드시 학생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갑니다. 그래서 뒷산을 한 바퀴 돌고 오면 기분전환도 되고 그런 기분전환이 시를 쓰는 흥취로 연결됩니다.
줄 1013: 줄 881:
    
  ​비슷한 방식의 수업이 오래 진행되다 보면 아이들은 꾀가 납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는 경우가 가끔 생깁니다. 놀자든가,​ 컴퓨터게임을 하게 해달라든가,​ 축구를 하자든가 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한테 이런 제안을 할 정도이면 학생과 교사 사이는 아주 밀접하다는 얘기입니다.  ​비슷한 방식의 수업이 오래 진행되다 보면 아이들은 꾀가 납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는 경우가 가끔 생깁니다. 놀자든가,​ 컴퓨터게임을 하게 해달라든가,​ 축구를 하자든가 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한테 이런 제안을 할 정도이면 학생과 교사 사이는 아주 밀접하다는 얘기입니다.
 +
  ​그런 상황에서 안 된다고 잘라 말하는 것은 그런 얘기를 할 만큼 가깝다고 느끼는 아이들의 심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나의 경우에는 허락을 하되, 그 다음 시간에 자신이 한 것을 글로 옮긴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그러면 그 다음 쓰기 싫은 글을 써야 하는 줄 알면서도 바로 앞의 꿀떡을 냉큼 물고 맙니다. 그러면 그 다음 시간에 글을 써야 합니다. 약속을 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성심성의껏 씁니다. 물론 끝까지 뺀질거리는 놈도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이라고 거절할 것이 아니라 흥정이라도 해서 아이들이 글을 쓰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안 된다고 잘라 말하는 것은 그런 얘기를 할 만큼 가깝다고 느끼는 아이들의 심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나의 경우에는 허락을 하되, 그 다음 시간에 자신이 한 것을 글로 옮긴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그러면 그 다음 쓰기 싫은 글을 써야 하는 줄 알면서도 바로 앞의 꿀떡을 냉큼 물고 맙니다. 그러면 그 다음 시간에 글을 써야 합니다. 약속을 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성심성의껏 씁니다. 물론 끝까지 뺀질거리는 놈도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이라고 거절할 것이 아니라 흥정이라도 해서 아이들이 글을 쓰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아이들이 많은 요즘은, 글쓰기를 컴퓨터에서 시키는 것도 한 번쯤 해볼 만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교사가 학생들이 언제든지 들어와서 글을 남길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을 한 군데 확보해놓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카페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제목을 <​머털도사의 즐거운 학교>​라고 붙였는데,​ 학년별로 방을 하나씩 만들어서 모든 작품은 이곳에 올리도록 해놓았습니다. 시는 물론, 수필, 독후감, 방학 중 과제까지 기간만 지정하면 이곳에다 글을 올리는 것을 모든 과제를 마감합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아이들이 많은 요즘은, 글쓰기를 컴퓨터에서 시키는 것도 한 번쯤 해볼 만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교사가 학생들이 언제든지 들어와서 글을 남길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을 한 군데 확보해놓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카페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제목을 <​머털도사의 즐거운 학교>​라고 붙였는데,​ 학년별로 방을 하나씩 만들어서 모든 작품은 이곳에 올리도록 해놓았습니다. 시는 물론, 수필, 독후감, 방학 중 과제까지 기간만 지정하면 이곳에다 글을 올리는 것을 모든 과제를 마감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작업한 모든 것을 카페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래서 졸업한 후에도 이 카페에 들어오면 자신들이 3년 동안 올렸던 글과 친구들의 글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학교별로,​ 학년별로 방이 나뉘어서 언제나 들어와서 글을 올립니다. 졸업생들도 이따금 들어와서 근황을 남기고 갑니다.  ​지금까지 제가 작업한 모든 것을 카페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래서 졸업한 후에도 이 카페에 들어오면 자신들이 3년 동안 올렸던 글과 친구들의 글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학교별로,​ 학년별로 방이 나뉘어서 언제나 들어와서 글을 올립니다. 졸업생들도 이따금 들어와서 근황을 남기고 갑니다.
줄 1021: 줄 891:
    
  ​학교에는 갖가지 행사가 있습니다. 공식행사가 대부분입니다. 소풍, 수학여행,​ 축제, 아가모 실천운동(충북),​ 학교폭력 글짓기 같은 것들입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좋아하고 참여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강제 동원되는 행사들입니다. 기분이 좋았던 행사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소감을 정리하게 합니다. 꼭 거창하게 할 것은 없습니다. 간단한 정리를 요구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런 습관이 글 쓰는 데 도움이 되고, 또 그런 정리 버릇이 들면 글쓰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학생들에게 요구하기도 쉽습니다.  ​학교에는 갖가지 행사가 있습니다. 공식행사가 대부분입니다. 소풍, 수학여행,​ 축제, 아가모 실천운동(충북),​ 학교폭력 글짓기 같은 것들입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좋아하고 참여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강제 동원되는 행사들입니다. 기분이 좋았던 행사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소감을 정리하게 합니다. 꼭 거창하게 할 것은 없습니다. 간단한 정리를 요구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런 습관이 글 쓰는 데 도움이 되고, 또 그런 정리 버릇이 들면 글쓰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학생들에게 요구하기도 쉽습니다.
 +
 다음은 매년 같은 장소로 가는 소풍을 다녀와서 쓴 시입니다. 이 정도면 억지로 쓴 것치고는 괜찮은 수확이라 할 것입니다. 다음은 매년 같은 장소로 가는 소풍을 다녀와서 쓴 시입니다. 이 정도면 억지로 쓴 것치고는 괜찮은 수확이라 할 것입니다.
- +  ​
   8km   8km
   -황미선(내북중 3)   -황미선(내북중 3)
줄 1028: 줄 899:
   미동산 수목원 등산길   미동산 수목원 등산길
   8km.   8km.
- +  ​
   힘들어   힘들어
   헥헥 거리며 오른   헥헥 거리며 오른
줄 1036: 줄 907:
   즐겁게 사진 찍으며 오른   즐겁게 사진 찍으며 오른
   등산길 2km.   등산길 2km.
 +  ​
   이곳저곳   이곳저곳
   구경하며,​ 수다 떨며 걸은   구경하며,​ 수다 떨며 걸은
줄 1052: 줄 923:
    
  ​학생들에게 벌칙으로 글을 쓰게 하는 것은 최악입니다. 글쓰기를 독으로 만들어서 아예 등을 돌리게 만드는 일이죠. 반성문 같은 것은, 사람의 감성과 영혼을 한꺼번에 죽이는 일입니다.  ​학생들에게 벌칙으로 글을 쓰게 하는 것은 최악입니다. 글쓰기를 독으로 만들어서 아예 등을 돌리게 만드는 일이죠. 반성문 같은 것은, 사람의 감성과 영혼을 한꺼번에 죽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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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자발성이 약간 들어있는 강제는 글쓰기에 좋은 작용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숙제를 안 해오거나 해서 벌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경우, 그런 상황에 처한 자신의 심정을 시로 써오면 벌을 면제해주는 방식입니다. 이럴 때는 학생이 전혀 할 의사가 없는데 시키면 최악입니다. 학생이 어느 정도 이 제안을 받아들일 태도가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자발성이 약간 들어있는 강제는 글쓰기에 좋은 작용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숙제를 안 해오거나 해서 벌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경우, 그런 상황에 처한 자신의 심정을 시로 써오면 벌을 면제해주는 방식입니다. 이럴 때는 학생이 전혀 할 의사가 없는데 시키면 최악입니다. 학생이 어느 정도 이 제안을 받아들일 태도가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줄 1058: 줄 930:
    
  ​지역 문화행사에는 대부분 백일장이 있습니다. 그런 백일장에서는 그렇고 그런 뻔한 시들이 상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의미에서 시를 가르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런 행사가 있구나 하는 것을 일깨워줄 필요는 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많은 학생들을 참가시켜서 체험시키는 것도 좋습니다.  ​지역 문화행사에는 대부분 백일장이 있습니다. 그런 백일장에서는 그렇고 그런 뻔한 시들이 상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의미에서 시를 가르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런 행사가 있구나 하는 것을 일깨워줄 필요는 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많은 학생들을 참가시켜서 체험시키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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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인중학교의 경우 담장을 하나 사이로 오장환문학관이 있는데, 매년 문학제를 하면서 백일장을 엽니다. 그래서 전교생이 다 백일장에 참여합니다. 물론 그럴 때 쓰는 시의 성격이나 요령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런 행사가 있으니 참가하여 한 번 써본다는 그런 정도의 설명만 해줍니다. 그래도 상을 받는 학생들이 꽤 나옵니다.  ​회인중학교의 경우 담장을 하나 사이로 오장환문학관이 있는데, 매년 문학제를 하면서 백일장을 엽니다. 그래서 전교생이 다 백일장에 참여합니다. 물론 그럴 때 쓰는 시의 성격이나 요령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런 행사가 있으니 참가하여 한 번 써본다는 그런 정도의 설명만 해줍니다. 그래도 상을 받는 학생들이 꽤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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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이 걸린 행사라고 해서 거기에 너무 집착하면 오히려 망칩니다. 특히 그런 것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를 망가뜨립니다. 결국은 시를 망가뜨리는 일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상이 걸린 행사라고 해서 거기에 너무 집착하면 오히려 망칩니다. 특히 그런 것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를 망가뜨립니다. 결국은 시를 망가뜨리는 일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줄 1065: 줄 939:
    
  ​글쓰기를 싫어하는 학생들은 가장 간단한 시를 쓰는 데도 그것을 귀찮아합니다. 이런 학생들이 반 강요 비슷한 분위기로 시를 쓰면 곧 잊어버립니다. 마치 똥 누는 것처럼 돌아보기도 싫어합니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학생들은 가장 간단한 시를 쓰는 데도 그것을 귀찮아합니다. 이런 학생들이 반 강요 비슷한 분위기로 시를 쓰면 곧 잊어버립니다. 마치 똥 누는 것처럼 돌아보기도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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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런 작업들이 몇 차례 반복되면 그런 행위들이 결과물을 쌓게 되고, 그런 것들을 학생들은 눈여겨보지 않는다고 해도, 교사가 그것을 잘 보관하면 나중에 그럴 듯한 보람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그 보람은, 그것을 귀찮은 것으로만 여겨왔던 학생들에게 좋은 추억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이런 작업들이 몇 차례 반복되면 그런 행위들이 결과물을 쌓게 되고, 그런 것들을 학생들은 눈여겨보지 않는다고 해도, 교사가 그것을 잘 보관하면 나중에 그럴 듯한 보람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그 보람은, 그것을 귀찮은 것으로만 여겨왔던 학생들에게 좋은 추억거리가 됩니다.
    
줄 1071: 줄 946:
    
  ​소규모 학교에서 시를 쓰는 가장 좋은 목적은 시화전입니다. 학교에서는 매년 학예발표회나 축제를 하게 되고, 그런 분위기에 맞추어 시화전을 열면 겉으로 보기에 가장 하려한 행사가 됩니다.  ​소규모 학교에서 시를 쓰는 가장 좋은 목적은 시화전입니다. 학교에서는 매년 학예발표회나 축제를 하게 되고, 그런 분위기에 맞추어 시화전을 열면 겉으로 보기에 가장 하려한 행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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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런 시화전을 행사의 일환으로만 생각하여 추진하면 그것을 추진하는 선생님이나 학생들이 모두 심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것이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로 만들지 않으려면 연초부터 학생들에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시 쓰기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면 그때까지 쓴 시 중에서 선생님이 보기에 가장 좋은 시를 골라서 시화를 그리면 복잡할 것 같은 시화전도 아주 간단히 그리고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화전을 행사의 일환으로만 생각하여 추진하면 그것을 추진하는 선생님이나 학생들이 모두 심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것이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로 만들지 않으려면 연초부터 학생들에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시 쓰기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면 그때까지 쓴 시 중에서 선생님이 보기에 가장 좋은 시를 골라서 시화를 그리면 복잡할 것 같은 시화전도 아주 간단히 그리고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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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북중학교는 각 학년에 1학급만 있는 작은 학교이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아주 편하고 좋았습니다. 내북중학교에서는 축제가 5월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축제가 시작되면 시화전도 함께 시작되어서 상당히 일찍 시 쓰기를 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3월부터 몇 차례 시 쓰기를 합니다.  ​내북중학교는 각 학년에 1학급만 있는 작은 학교이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아주 편하고 좋았습니다. 내북중학교에서는 축제가 5월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축제가 시작되면 시화전도 함께 시작되어서 상당히 일찍 시 쓰기를 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3월부터 몇 차례 시 쓰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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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 준비가 시작되면 모든 시화전 준비는 학생들이 하도록 했습니다. 서무실에 부탁해서 커다란 합판을 사다달라고 하고서는,​ 문짝만한 합판이 도착하면 톱, 망치, 사포, 아세테이트지,​ 테이프 같은 모든 준비물을 마련해줍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시화 크기에 맞게 합판을 톱으로 자르고 사포로 문지르고 시화그림을 붙이고 아세테이트지를 덮어씌우고 해서 작품을 완성합니다.  ​축제 준비가 시작되면 모든 시화전 준비는 학생들이 하도록 했습니다. 서무실에 부탁해서 커다란 합판을 사다달라고 하고서는,​ 문짝만한 합판이 도착하면 톱, 망치, 사포, 아세테이트지,​ 테이프 같은 모든 준비물을 마련해줍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시화 크기에 맞게 합판을 톱으로 자르고 사포로 문지르고 시화그림을 붙이고 아세테이트지를 덮어씌우고 해서 작품을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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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렇게 만든 시화를 시화전이 끝나고 복도 곳곳에 걸었는데,​ 몇 달이 지나자 변형이 생기는 것입니다. 습기에 노출되면서 합판이 비틀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3년째부터는 합판 뒤에 가느다란 나무 테두리가 붙은 패널을 구해다 주었습니다. 문방구나 표구점에서 4,​000원이면 구했는데 한 3년 사이에 곱절인 8,​000원으로 뛰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예 학교 예산에 편성하여 매년 구입해다 씁니다. 패널로 하면 변형도 가지 않고 나머지 공정은 학생들이 스스로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좋은 추억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시화를 시화전이 끝나고 복도 곳곳에 걸었는데,​ 몇 달이 지나자 변형이 생기는 것입니다. 습기에 노출되면서 합판이 비틀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3년째부터는 합판 뒤에 가느다란 나무 테두리가 붙은 패널을 구해다 주었습니다. 문방구나 표구점에서 4,​000원이면 구했는데 한 3년 사이에 곱절인 8,​000원으로 뛰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예 학교 예산에 편성하여 매년 구입해다 씁니다. 패널로 하면 변형도 가지 않고 나머지 공정은 학생들이 스스로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좋은 추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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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은 미술도 배우고 기술도 배우기 때문에 예상한 것보다 훨씬 잘합니다. 처음에는 실수도 하지만 시화를 그릴 때도 자신이 한 번 그렸다가 옆 친구의 것이 좋으면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다시 그립니다. 이 곁눈질은 학년 간에도 이루어져 신입생들은 멋모르고 얼렁뚱땅 해냈다가 선배들의 작품이 워낙 깔끔한 것을 보고는 다시 해내는 일이 해마다 반복됩니다. 한두 해만 지나면 시화전의 모습은 시내의 표구점에서 만들어주는 것 못지않게 좋아집니다.  ​학생들은 미술도 배우고 기술도 배우기 때문에 예상한 것보다 훨씬 잘합니다. 처음에는 실수도 하지만 시화를 그릴 때도 자신이 한 번 그렸다가 옆 친구의 것이 좋으면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다시 그립니다. 이 곁눈질은 학년 간에도 이루어져 신입생들은 멋모르고 얼렁뚱땅 해냈다가 선배들의 작품이 워낙 깔끔한 것을 보고는 다시 해내는 일이 해마다 반복됩니다. 한두 해만 지나면 시화전의 모습은 시내의 표구점에서 만들어주는 것 못지않게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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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화전 체험은 나중에 학생들이 상급학교 진학한 후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고등학교에 가서도 어렵지 않게 학교 활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실제로 시내 고등학교에서 시화전 경험을 한 학생들 손들어보라고 하면 한 반에 두엇 정도인데,​ 그것도 대부분 시를 표구점에 맡겨서 표구점에서 예쁜 글씨로 써서 만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직접 쓰고 그리고 붙이고, 심지어 톱질까지 해서 시화전을 한 학생은, 자신이 할 때는 몰라도, 지나고 나면 정말 대단한 추억임을 기억하고는 중학교 때의 추억거리로 떠올립니다.  이 시화전 체험은 나중에 학생들이 상급학교 진학한 후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고등학교에 가서도 어렵지 않게 학교 활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실제로 시내 고등학교에서 시화전 경험을 한 학생들 손들어보라고 하면 한 반에 두엇 정도인데,​ 그것도 대부분 시를 표구점에 맡겨서 표구점에서 예쁜 글씨로 써서 만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직접 쓰고 그리고 붙이고, 심지어 톱질까지 해서 시화전을 한 학생은, 자신이 할 때는 몰라도, 지나고 나면 정말 대단한 추억임을 기억하고는 중학교 때의 추억거리로 떠올립니다.
    
줄 1082: 줄 963:
    
  ​시화전을 열면 꼭 작품집을 만듭니다. 인원이 40-50명 정도인 학교이기 때문에 전교생이 한 작품씩 내도록 하여 시화전에 제출된 작품을 책 형식으로 묶는 것입니다.  ​시화전을 열면 꼭 작품집을 만듭니다. 인원이 40-50명 정도인 학교이기 때문에 전교생이 한 작품씩 내도록 하여 시화전에 제출된 작품을 책 형식으로 묶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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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5용지로 프린트 하여, 그것을 B4용지에 앞뒤로 붙여서 복사한 다음, 반을 접어서 박음쇠로 한 번 박고 표지를 풀로 붙이는 것입니다. 학교 복사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돈이 들 것도 없습니다. 그것을 만드는 품이 듭니다만 그것도 학생들 몇을 불러다 시키거나 교무보조에게 부탁하면 어렵지 않게 끝납니다.  ​B5용지로 프린트 하여, 그것을 B4용지에 앞뒤로 붙여서 복사한 다음, 반을 접어서 박음쇠로 한 번 박고 표지를 풀로 붙이는 것입니다. 학교 복사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돈이 들 것도 없습니다. 그것을 만드는 품이 듭니다만 그것도 학생들 몇을 불러다 시키거나 교무보조에게 부탁하면 어렵지 않게 끝납니다.
    
줄 1088: 줄 970:
    
  전 학년이 3개 학급이기 때문에 저는 모든 학년의 국어를 가르칩니다. 그래서 매년 학년말에 마무리 작업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3학년에게는 졸업논문을,​ 2학년에게는 소설쓰기를,​ 1학년에게는 학급문집을 만들게 합니다. 여기다가 매년 하는 시화전까지 하여 작품집을 만듭니다. 그러면 1년에 4권의 책이 생깁니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엮습니다.  전 학년이 3개 학급이기 때문에 저는 모든 학년의 국어를 가르칩니다. 그래서 매년 학년말에 마무리 작업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3학년에게는 졸업논문을,​ 2학년에게는 소설쓰기를,​ 1학년에게는 학급문집을 만들게 합니다. 여기다가 매년 하는 시화전까지 하여 작품집을 만듭니다. 그러면 1년에 4권의 책이 생깁니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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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런 일을 하다보면,​ 교장선생님이 매년 이런 제안을 해옵니다. 즉 돈을 지원해줄 테니 이런 글들을 모아서 학교 이름을 출판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제안을 매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다보면,​ 교장선생님이 매년 이런 제안을 해옵니다. 즉 돈을 지원해줄 테니 이런 글들을 모아서 학교 이름을 출판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제안을 매년 거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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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창작 지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어선생님들이라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창작을 가리키는 것은, 창작을 해본 사람이나 창작을 해보려고 한 사람이 아니고는 가르치기 참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가리키면 창작의 본질과는 어긋나는 것을 강조하게 되어 자칫하면 학생의 창작능력을 싹부터 문질러버리는 엉뚱한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이것이 가장 걱정이 되어 ‘제도화’하자는 교장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하곤 합니다.  이 창작 지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어선생님들이라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창작을 가리키는 것은, 창작을 해본 사람이나 창작을 해보려고 한 사람이 아니고는 가르치기 참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가리키면 창작의 본질과는 어긋나는 것을 강조하게 되어 자칫하면 학생의 창작능력을 싹부터 문질러버리는 엉뚱한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이것이 가장 걱정이 되어 ‘제도화’하자는 교장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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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시를 창작하는 전문가이고 또 창작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어서 제가 아는 그 만큼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다가 때가 되면 다른 학교로 전근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글쓰는 행위를 학교의 예산에 책정하여 시행하면 그것은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난 뒤에도 제도로 남아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강요할 것이고, 그 후에 벌어지는 상황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도만 남아서 학생들에게 억지 일을 시키게 됩니다.  ​저는 시를 창작하는 전문가이고 또 창작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어서 제가 아는 그 만큼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다가 때가 되면 다른 학교로 전근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글쓰는 행위를 학교의 예산에 책정하여 시행하면 그것은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난 뒤에도 제도로 남아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강요할 것이고, 그 후에 벌어지는 상황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도만 남아서 학생들에게 억지 일을 시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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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후임으로 오는 분이 저와 같은 성향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앞서 분석한 것처럼 교사가 창작에 직접 관여하는 경우는 정말 많지 않습니다. 안 좋은 결과가 예상됩니다. 그래서 모든 행위를 저 개인의 일에서 학교 전체의 일로 번지지 않게 하려고 교장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하곤 했습니다.  ​물론 후임으로 오는 분이 저와 같은 성향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앞서 분석한 것처럼 교사가 창작에 직접 관여하는 경우는 정말 많지 않습니다. 안 좋은 결과가 예상됩니다. 그래서 모든 행위를 저 개인의 일에서 학교 전체의 일로 번지지 않게 하려고 교장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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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창의성을 발휘하여 무언가 그럴 듯한 것이 이루어지면,​ 그것을 꼭 드러내서 학교의 업적으로 내세우려는 것이 학교를 관리하고 지도하는 책임자들의 생리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임무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 학교의 특별한 자랑거리로 부각되면 그 행위의 본 취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아서 학생들을 들볶는 가장 성가신 물건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교육현장에서 평생토록 보아온 것입니다. 아침자습이 그러하고 방과 후 활동이 그러합니다. 왜곡된 어른들의 시각에 어느 하나 제대로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굳이 그런 제안을 거절하곤 했던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창의성을 발휘하여 무언가 그럴 듯한 것이 이루어지면,​ 그것을 꼭 드러내서 학교의 업적으로 내세우려는 것이 학교를 관리하고 지도하는 책임자들의 생리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임무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 학교의 특별한 자랑거리로 부각되면 그 행위의 본 취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아서 학생들을 들볶는 가장 성가신 물건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교육현장에서 평생토록 보아온 것입니다. 아침자습이 그러하고 방과 후 활동이 그러합니다. 왜곡된 어른들의 시각에 어느 하나 제대로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굳이 그런 제안을 거절하곤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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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올해(2008) 회인중학교에서 처음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예외를 허용한 것은, 그 제안을 한 교장 선생님이 위에서 말한 그런 우려를 고려할 줄 아는 분이라는 것과, 전에 근무한 내북중학교에서 제가 떠난 뒤 지금까지도 똑같은 일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해(2008) 회인중학교에서 처음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예외를 허용한 것은, 그 제안을 한 교장 선생님이 위에서 말한 그런 우려를 고려할 줄 아는 분이라는 것과, 전에 근무한 내북중학교에서 제가 떠난 뒤 지금까지도 똑같은 일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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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북중학교를 떠나면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후임으로 오는 선생님이 받을 마음의 부담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후임이신 반성남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무리를 주지 않고 같은 작업을 해서 학교 측의 지원으로 매년 깔끔하게 제본된 문집을 만들어서 내북중학교의 전통으로 확립시켰습니다.  ​내북중학교를 떠나면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후임으로 오는 선생님이 받을 마음의 부담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후임이신 반성남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무리를 주지 않고 같은 작업을 해서 학교 측의 지원으로 매년 깔끔하게 제본된 문집을 만들어서 내북중학교의 전통으로 확립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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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전통은 교사가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학생들 사이에서 저절로 형성된 것이어서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즉 제가 부임하던 첫해인 2000년에 학생들이 졸업논문을 썼는데 두 차례 그 작업을 반복하자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3학년이 되면 졸업논문을 써야 한다는 것을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어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음, 1학년 때는 문집 만들고, 2학년 때는 소설을 쓰고, 3학년이 되면 졸업논문 쓰는 거야.’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매년 이런 작업을 알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전통은 교사가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학생들 사이에서 저절로 형성된 것이어서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즉 제가 부임하던 첫해인 2000년에 학생들이 졸업논문을 썼는데 두 차례 그 작업을 반복하자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3학년이 되면 졸업논문을 써야 한다는 것을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어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음, 1학년 때는 문집 만들고, 2학년 때는 소설을 쓰고, 3학년이 되면 졸업논문 쓰는 거야.’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매년 이런 작업을 알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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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가지 교장선생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소규모 학교가 갖는 문제 때문입니다. 졸업생이 매년 15명 내외이다 보니 여태까지 졸업앨범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졸업을 할 때 전체 사진을 찍어서 표지를 만들어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허전하기 짝이 없지요. 그런데 그 동안 썼던 학생들의 글을 모아서 졸업문집을 만들면 이 문제가 해결됩니다. 즉 문집의 앞쪽에 칼라로 학생사진과 전체 사진, 그리고 학생활동과 관련된 추억거리 사진을 몇 장 넣으면 그것은 굳이 앨범을 만들지 않아도 학생들에게는 앨범 이상의 효과를 주게 됩니다. 그래서 올해는 졸업논문집과 시 작품집, 그리고 소설집까지 모아서 사진과 함께 묶고는 “꿈을 키우는 회인골 문집”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또 한 가지 교장선생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소규모 학교가 갖는 문제 때문입니다. 졸업생이 매년 15명 내외이다 보니 여태까지 졸업앨범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졸업을 할 때 전체 사진을 찍어서 표지를 만들어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허전하기 짝이 없지요. 그런데 그 동안 썼던 학생들의 글을 모아서 졸업문집을 만들면 이 문제가 해결됩니다. 즉 문집의 앞쪽에 칼라로 학생사진과 전체 사진, 그리고 학생활동과 관련된 추억거리 사진을 몇 장 넣으면 그것은 굳이 앨범을 만들지 않아도 학생들에게는 앨범 이상의 효과를 주게 됩니다. 그래서 올해는 졸업논문집과 시 작품집, 그리고 소설집까지 모아서 사진과 함께 묶고는 “꿈을 키우는 회인골 문집”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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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처음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앞으로는 매년 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설령 제가 떠나고 후임자 분이 저와 똑같이 할 수 없다고 해도 1년간 학생들이 쓴 글을 모아서 묶으면 되기 때문에 앨범 문제까지 해결되는 이 방법은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거, 상투화한 연례행사로 전락하지 않고 학생들이 즐거이 참여하는 일이 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올해 처음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앞으로는 매년 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설령 제가 떠나고 후임자 분이 저와 똑같이 할 수 없다고 해도 1년간 학생들이 쓴 글을 모아서 묶으면 되기 때문에 앨범 문제까지 해결되는 이 방법은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거, 상투화한 연례행사로 전락하지 않고 학생들이 즐거이 참여하는 일이 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줄 1111: 줄 1003:
  
  ​앞서 여러 차례 얘기했듯이 아이들은 타고난 시인입니다.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시 쓸 상황만 만들어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잘 씁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교사가 시 창작의 원리를 몰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써오는 시에 대해서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는 기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는 그 기준에 대해 정리하려고 합니다.  ​앞서 여러 차례 얘기했듯이 아이들은 타고난 시인입니다.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시 쓸 상황만 만들어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잘 씁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교사가 시 창작의 원리를 몰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써오는 시에 대해서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는 기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는 그 기준에 대해 정리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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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시중에 시의 창작 원리를 잘 설명한 책이 있을까 하여 몇 년 전에 도서관을 뒤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 쓰기를 안내한다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의 대부분이 시 창작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시 이론을 소개하는 데 급급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대학생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시 쓰는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시 창작 안내서로 버젓이 행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시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정말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 안내서를 쓰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거나 아예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 시인들이 인터넷에서도 수많은 시 창작 강의를 하는데, 전부 똑같습니다. 이론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 창작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혹시 시중에 시의 창작 원리를 잘 설명한 책이 있을까 하여 몇 년 전에 도서관을 뒤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 쓰기를 안내한다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의 대부분이 시 창작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시 이론을 소개하는 데 급급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대학생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시 쓰는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시 창작 안내서로 버젓이 행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시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정말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 안내서를 쓰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거나 아예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 시인들이 인터넷에서도 수많은 시 창작 강의를 하는데, 전부 똑같습니다. 이론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 창작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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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알기로, 빛깔은 무한히 많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색깔들은 모두 빨강, 파랑, 노랑 3가지 빛이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조화입니다. 결국 이 삼원색이 수많은 색들을 만들어내는 기본이 되는 것이죠.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알기로, 빛깔은 무한히 많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색깔들은 모두 빨강, 파랑, 노랑 3가지 빛이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조화입니다. 결국 이 삼원색이 수많은 색들을 만들어내는 기본이 되는 것이죠.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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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이론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용어가 있고 방법이 있다고 설명하지만,​ 제가 한 20여 년 시를 쓰면서 보니, 시 쓰는 사람이 사용하는 방법은 단 3가지뿐입니다. 빗대기[1],​ 그리기[2],​ 말하기[3]가 그것입니다.  시 이론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용어가 있고 방법이 있다고 설명하지만,​ 제가 한 20여 년 시를 쓰면서 보니, 시 쓰는 사람이 사용하는 방법은 단 3가지뿐입니다. 빗대기[1],​ 그리기[2],​ 말하기[3]가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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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대기[1]는 비유의 방법을 쓰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의인법을 비롯하여 은유, 직유, 상징까지 다 포함됩니다. 이것은 시에서 아주 많이 쓰이는 기법입니다.  ​빗대기[1]는 비유의 방법을 쓰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의인법을 비롯하여 은유, 직유, 상징까지 다 포함됩니다. 이것은 시에서 아주 많이 쓰이는 기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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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1148: 줄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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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말이나 주제를 부각시키지 않고 풍경 묘사로 그쳤습니다. 그런데도 아주 풍경이 잘 살아나서 읽는 이로 하여금 묘한 감동을 일으킵니다. 잃어버린 순수한 마음이 풍경과 마주쳐서 이미지로 잘 살아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미지로만 시를 쓰는 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말이나 주제를 부각시키지 않고 풍경 묘사로 그쳤습니다. 그런데도 아주 풍경이 잘 살아나서 읽는 이로 하여금 묘한 감동을 일으킵니다. 잃어버린 순수한 마음이 풍경과 마주쳐서 이미지로 잘 살아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미지로만 시를 쓰는 수도 있습니다.
-  ​반면에 직접 말하는 방법인 말하기[3]도 있습니다.+ 반면에 직접 말하는 방법인 말하기[3]도 있습니다.
  
   시간   시간
줄 1193: 줄 1089:
  
  이 작품은 자신의 침 맞은 체험을 말한 것입니다. [3]이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말하기[3]의 방법과 그리기[2]의 방법이 뒤섞인 시입니다. 따라서 [3+2]형의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침 맞은 체험을 말한 것입니다. [3]이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말하기[3]의 방법과 그리기[2]의 방법이 뒤섞인 시입니다. 따라서 [3+2]형의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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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시는 아주 복잡한 것 같지만 위의 세 가지 방법이 변형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창작의 관점에서 시를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원리만 안다면 시를 지도할 때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시는 아주 복잡한 것 같지만 위의 세 가지 방법이 변형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창작의 관점에서 시를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원리만 안다면 시를 지도할 때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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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시 창작의 원리는 모두 3가지입니다. 아니, 4가지겠군요. 변형과 종합이 있으니까요.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시 창작의 원리는 모두 3가지입니다. 아니, 4가지겠군요. 변형과 종합이 있으니까요.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줄 1202: 줄 1100:
  
  ​뒤섞기의 경우는 아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경우의 수만 해도 [1+2], [1+3], [2+1], [2+3], [3+1], [3+2], [1+2+3], [2+1+3], [3+2+1]…… 무한대죠.  ​뒤섞기의 경우는 아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경우의 수만 해도 [1+2], [1+3], [2+1], [2+3], [3+1], [3+2], [1+2+3], [2+1+3], [3+2+1]…… 무한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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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깔에는 3원색이 있듯이, 시에는 3원소가 있습니다. 시는 그 3원소로 이루어졌고,​ 그 3원소를 알아보는 순간, 시의 정체가 눈앞에 또렷이 드러납니다.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원리를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시 한 귀퉁이에다가 [1]이라거나 [3+1], 아니면 더 복잡하게 [1+3+2] 하는 식으로 슬그머니 표시를 해두면 그 시가 어떤 원리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몇 차례 연습을 해보면 시를 읽는 순간 그 시의 창작 원리가 한 눈에 쏙 들어옵니다. 그러면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 내 스스로 시를 쓸 수도 있습니다. 그 복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갑니다.  ​빛깔에는 3원색이 있듯이, 시에는 3원소가 있습니다. 시는 그 3원소로 이루어졌고,​ 그 3원소를 알아보는 순간, 시의 정체가 눈앞에 또렷이 드러납니다.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원리를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시 한 귀퉁이에다가 [1]이라거나 [3+1], 아니면 더 복잡하게 [1+3+2] 하는 식으로 슬그머니 표시를 해두면 그 시가 어떤 원리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몇 차례 연습을 해보면 시를 읽는 순간 그 시의 창작 원리가 한 눈에 쏙 들어옵니다. 그러면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 내 스스로 시를 쓸 수도 있습니다. 그 복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갑니다.
  
줄 1211: 줄 1110:
  
  ​2001년 내북중학교. 7월초면 기말고사도 끝나 딱히 할 일도 없습니다. 날씨는 이제 여름의 절정으로 치닫느라 헉헉거릴 만큼 더워지죠. 졸린 5교시 3학년 수업을 하는데 느닷없이 한 녀석이 소리칩니다.  ​2001년 내북중학교. 7월초면 기말고사도 끝나 딱히 할 일도 없습니다. 날씨는 이제 여름의 절정으로 치닫느라 헉헉거릴 만큼 더워지죠. 졸린 5교시 3학년 수업을 하는데 느닷없이 한 녀석이 소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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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우리 물놀이 가요.”  ​“선생님,​ 우리 물놀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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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전 해 2학기에는 학교 앞 개울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은 적이 있습니다. 저의 이런 행태를 아는 녀석이 내지른 말입니다. 제가 안 된다고 잘라버렸으면 끝났을 텐데, 잠시 망설이는 틈을 보이자 다른 녀석들도 덩달아서 들떴습니다. 그래서 6교시 영어 선생님에게 시간을 달라고 하고 2시간을 내쳐 놀 생각으로 교실을 나섰습니다. 20분 가면 어른 키도 삼키는 깊은 물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문쯤 나가고 있으니까 2학년 교실에서도 웅성거리더니 잠시 후에 우리 행렬의 꼬리에 따라 붙었습니다. 그리곤 곧 1학년도 합류했습니다. 3학년 국어, 2학년 영어, 1학년 사회 시간이 이렇게 변해버린 것입니다. 연세 지긋한 체육 선생님이 우리의 움직임을 보고 불안했는지 교장실에 올라가서 보고라도 하라고 해서 제가 올라가 구두허락을 맡았습니다.  그 전 해 2학기에는 학교 앞 개울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은 적이 있습니다. 저의 이런 행태를 아는 녀석이 내지른 말입니다. 제가 안 된다고 잘라버렸으면 끝났을 텐데, 잠시 망설이는 틈을 보이자 다른 녀석들도 덩달아서 들떴습니다. 그래서 6교시 영어 선생님에게 시간을 달라고 하고 2시간을 내쳐 놀 생각으로 교실을 나섰습니다. 20분 가면 어른 키도 삼키는 깊은 물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문쯤 나가고 있으니까 2학년 교실에서도 웅성거리더니 잠시 후에 우리 행렬의 꼬리에 따라 붙었습니다. 그리곤 곧 1학년도 합류했습니다. 3학년 국어, 2학년 영어, 1학년 사회 시간이 이렇게 변해버린 것입니다. 연세 지긋한 체육 선생님이 우리의 움직임을 보고 불안했는지 교장실에 올라가서 보고라도 하라고 해서 제가 올라가 구두허락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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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곤 신나게 물놀이 했습니다. 처음엔 저희들끼리 놀더니 물가에서 쭈뼛거리는 선생님들을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가서는 옷까지 다 버려놓았습니다. 처녀 선생님의 비명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그리곤 신나게 물놀이 했습니다. 처음엔 저희들끼리 놀더니 물가에서 쭈뼛거리는 선생님들을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가서는 옷까지 다 버려놓았습니다. 처녀 선생님의 비명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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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후 KBS 지역 방송 차가 나타나서는 몇 장면을 찍습니다.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니 여름철 물놀이 보도 자료를 찍으러 왔구나. 신나게 놀다가 갈 때가 되어 아까 방송차가 카메라를 들이댔던 곳에 가 보았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잠시 후 KBS 지역 방송 차가 나타나서는 몇 장면을 찍습니다.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니 여름철 물놀이 보도 자료를 찍으러 왔구나. 신나게 놀다가 갈 때가 되어 아까 방송차가 카메라를 들이댔던 곳에 가 보았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수영금지”  ​“수영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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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 촬영 화면은 약간 흐릿하게 처리되어 그날 저녁 7시와 9시 저녁 뉴스에 물놀이 위험 경고 자료로 방영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촬영 화면은 약간 흐릿하게 처리되어 그날 저녁 7시와 9시 저녁 뉴스에 물놀이 위험 경고 자료로 방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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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약간 흐릿하게 처리되어 화면에 나오기는 했지만,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면 그곳이 어느 곳인가는 아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대가 센 저나 영어 선생님한테는 뭐라고 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함께 갔던 애꿎은 처녀 선생님만 심한 질책을 듣고 내려왔습니다. 다행히 그냥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다음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약간 흐릿하게 처리되어 화면에 나오기는 했지만,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면 그곳이 어느 곳인가는 아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대가 센 저나 영어 선생님한테는 뭐라고 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함께 갔던 애꿎은 처녀 선생님만 심한 질책을 듣고 내려왔습니다. 다행히 그냥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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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매년 7월이면 우리는 그곳으로 가서 물놀이 했습니다. 그 이듬해 교장선생님이 바뀌었거든요. 그리고 그때 혼났던 처녀 선생님은 지금은 도를 바꿔 경기도에서 근무한다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잘 계시지요?​ 홍석영 선생님!  ​그래도 매년 7월이면 우리는 그곳으로 가서 물놀이 했습니다. 그 이듬해 교장선생님이 바뀌었거든요. 그리고 그때 혼났던 처녀 선생님은 지금은 도를 바꿔 경기도에서 근무한다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잘 계시지요?​ 홍석영 선생님!
  
줄 1223: 줄 1129:
  
  ​수업 행위를 바라보는 눈이 다르면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생깁니다. 내북중학교. 봄이면 국어시간에 뒷산으로 나들이 갑니다. 진달래, 산수유가 피었는데 한창 사춘기로 접어든 아이들의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이렇게라도 풀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풀어진 마음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축구를 하자, 컴퓨터를 하게 해 달라 별별 요구를 다합니다.  ​수업 행위를 바라보는 눈이 다르면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생깁니다. 내북중학교. 봄이면 국어시간에 뒷산으로 나들이 갑니다. 진달래, 산수유가 피었는데 한창 사춘기로 접어든 아이들의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이렇게라도 풀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풀어진 마음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축구를 하자, 컴퓨터를 하게 해 달라 별별 요구를 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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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슬렁거리며 뒷산을 한 바퀴 돌고 동네로 돌아 나오면 농사짓는 동네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냥 아저씨도 있고 때로는 아이의 엄마나 아빠도 있습니다. 그러면 인사를 하고 학교로 돌아옵니다. 그리곤 다음 날 시를 쓰죠.  ​어슬렁거리며 뒷산을 한 바퀴 돌고 동네로 돌아 나오면 농사짓는 동네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냥 아저씨도 있고 때로는 아이의 엄마나 아빠도 있습니다. 그러면 인사를 하고 학교로 돌아옵니다. 그리곤 다음 날 시를 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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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장, 교감입니다. 거슬리지 않아야 하는데 거슬립니다. 대개는 우리의 빈둥거리는 행동거지를 곁눈질한,​ 우리가 오가며 마주친 그 학부형들로부터 항의 전화를 한 통 받고난 뒤입니다.  ​이것이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장, 교감입니다. 거슬리지 않아야 하는데 거슬립니다. 대개는 우리의 빈둥거리는 행동거지를 곁눈질한,​ 우리가 오가며 마주친 그 학부형들로부터 항의 전화를 한 통 받고난 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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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내 문제가 없다가 교감까지 발령 난 뒤에 일이 생겼습니다. 원래 3개 학급만 있는 소규모 학교에는 교감이 교장을 대행하게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북중학교에는 교감이 교장을 대행했습니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1997년에 터지자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외환위기로 우리나라 모든 경제구조와 행정체제가 너무 비대해서 문제라고 지적이 연일 방송에서 터져 나왔고 그것을 효율성을 갖춘 방향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내내 문제가 없다가 교감까지 발령 난 뒤에 일이 생겼습니다. 원래 3개 학급만 있는 소규모 학교에는 교감이 교장을 대행하게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북중학교에는 교감이 교장을 대행했습니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1997년에 터지자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외환위기로 우리나라 모든 경제구조와 행정체제가 너무 비대해서 문제라고 지적이 연일 방송에서 터져 나왔고 그것을 효율성을 갖춘 방향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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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교육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한 방향으로 이 논리가 작용했습니다. 사회구조의 재편성 과정에서 소외된 곳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었고, 소규모 학교가 소외되고 있다는 식으로 논리가 펼쳐진 것입니다. 그러더니 시골의 소규모 학교에는 교장이 없다는 소리가 커지고, 결국 이 소리는 교감이 교장 대행으로 있는 학교에 교장을 발령 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는 실제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교감 밖에 없던 작은 학교에 교장까지 온 것입니다. 심지어 2개 학년씩 합반으로 운영하는 어떤 초등학교에서는 선생님 셋에, 그 위로 교장과 교감이 얹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교육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한 방향으로 이 논리가 작용했습니다. 사회구조의 재편성 과정에서 소외된 곳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었고, 소규모 학교가 소외되고 있다는 식으로 논리가 펼쳐진 것입니다. 그러더니 시골의 소규모 학교에는 교장이 없다는 소리가 커지고, 결국 이 소리는 교감이 교장 대행으로 있는 학교에 교장을 발령 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는 실제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교감 밖에 없던 작은 학교에 교장까지 온 것입니다. 심지어 2개 학년씩 합반으로 운영하는 어떤 초등학교에서는 선생님 셋에, 그 위로 교장과 교감이 얹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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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환위기의 문제가 학교에는 이런 황당무계한 방향으로 작용했습니다. 교감밖에 없는 학교에 교장까지 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요?​ 감시감독의 강화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행정 문제라면 교감 대행체제로도 거뜬합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이 몇 십 년 동안 진행돼온 이 체제가 어려운 경제난국의 극복 차원에서 더 많은 관료를 학교에 배치하게 된 것입니다. 경제위기 극복의 방안으로 이게 맞기는 맞는 건가요? 저는 그쪽으로는 문외한이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는 지울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이상함은 예상대로 선생님들을 옥죄는 방향으로 작용했습니다.  ​외환위기의 문제가 학교에는 이런 황당무계한 방향으로 작용했습니다. 교감밖에 없는 학교에 교장까지 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요?​ 감시감독의 강화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행정 문제라면 교감 대행체제로도 거뜬합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이 몇 십 년 동안 진행돼온 이 체제가 어려운 경제난국의 극복 차원에서 더 많은 관료를 학교에 배치하게 된 것입니다. 경제위기 극복의 방안으로 이게 맞기는 맞는 건가요? 저는 그쪽으로는 문외한이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는 지울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이상함은 예상대로 선생님들을 옥죄는 방향으로 작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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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나갈 때는 결재를 맡고 나가라는 말을 합니다. 봄날의 국어시간에는 냉이 캐기, 뒷산 꽃구경하기,​ 앞개울에서 물고기잡기 행사가 있습니다. 3개 학년이 돌아가면서 하니, 3월 한 달 내내 학교는 시끌시끌합니다. 이게 뜳었던 게지요. 시골학교에서 이게 결재를 받고 해야 할 일인가요?​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나갈 때는 결재를 맡고 나가라는 말을 합니다. 봄날의 국어시간에는 냉이 캐기, 뒷산 꽃구경하기,​ 앞개울에서 물고기잡기 행사가 있습니다. 3개 학년이 돌아가면서 하니, 3월 한 달 내내 학교는 시끌시끌합니다. 이게 뜳었던 게지요. 시골학교에서 이게 결재를 받고 해야 할 일인가요?​
    
줄 1233: 줄 1145:
  
  ​할일도 없이 컴퓨터만 하던 교감 선생님이 어느 날 큰 사건을 하나 발견합니다. 학생 하나가 창문 밖으로 떨어뜨린 공책을 주워서 들춰보다가 눈이 번쩍 띄는 내용을 확인한 것입니다. 국어시간에 축구를 해서 재미있었다는,​ 공책 반쪽짜리 수필입니다. 교감은 그것을 잘 복사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학생에게 공책을 돌려주었죠.  ​할일도 없이 컴퓨터만 하던 교감 선생님이 어느 날 큰 사건을 하나 발견합니다. 학생 하나가 창문 밖으로 떨어뜨린 공책을 주워서 들춰보다가 눈이 번쩍 띄는 내용을 확인한 것입니다. 국어시간에 축구를 해서 재미있었다는,​ 공책 반쪽짜리 수필입니다. 교감은 그것을 잘 복사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학생에게 공책을 돌려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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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초, 교과서 정산 때문에 담당자하고 통화하느라고 수업이 4분 가량 늦어졌습니다. 허겁지겁 운동장으로 가보니 애들을 모아놓고 그 교감이 얼굴이 벌게진 채로 아이들을 혼냅니다. 수업종이 쳤는데도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농구대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던 겝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농구하기로 약속해서 내가 하라고 했다고 하고는 아이들을 넘겨받았습니다. 혼나던 아이들을 저한테 넘기면서 째려보더군요. 수업을 했습니다. 편을 갈라서 농구를 했죠.  3월 초, 교과서 정산 때문에 담당자하고 통화하느라고 수업이 4분 가량 늦어졌습니다. 허겁지겁 운동장으로 가보니 애들을 모아놓고 그 교감이 얼굴이 벌게진 채로 아이들을 혼냅니다. 수업종이 쳤는데도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농구대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던 겝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농구하기로 약속해서 내가 하라고 했다고 하고는 아이들을 넘겨받았습니다. 혼나던 아이들을 저한테 넘기면서 째려보더군요. 수업을 했습니다. 편을 갈라서 농구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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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을 마치고 와서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분개를 하며 자신의 교직을 걸고 가만두지 않겠다고 큰소리치더군요. 제깟 게 교직을 걸거나 말거나 그건 그쪽 사정이고,​ 교과 담임이 조금 늦는 동안 지난 시간에 약속됐던 것을 애들이 하고 있는데, 불러다가 호통 치는 건 뭐고, 담당 교사가 상황을 설명했으면 그러냐고 하면 될 것이지, 애들 보는 앞에서 못마땅하다는 듯이 째려보는 건 또 뭐냐는 그런 항의에 이 교감은 오히려 길길이 날뛰는 것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와서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분개를 하며 자신의 교직을 걸고 가만두지 않겠다고 큰소리치더군요. 제깟 게 교직을 걸거나 말거나 그건 그쪽 사정이고,​ 교과 담임이 조금 늦는 동안 지난 시간에 약속됐던 것을 애들이 하고 있는데, 불러다가 호통 치는 건 뭐고, 담당 교사가 상황을 설명했으면 그러냐고 하면 될 것이지, 애들 보는 앞에서 못마땅하다는 듯이 째려보는 건 또 뭐냐는 그런 항의에 이 교감은 오히려 길길이 날뛰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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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가 그렇게 대들면 교감이나 된 사람이 일단 자리를 옮겨서 얘기하자고 하여 앞뒤 상황 파악을 하고 잘잘못을 가리면 굳이 소리 높일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일을 키우는 건 그릇이 안 되는 자가 그 그릇이 놓여선 안 될 자리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교사가 그렇게 대들면 교감이나 된 사람이 일단 자리를 옮겨서 얘기하자고 하여 앞뒤 상황 파악을 하고 잘잘못을 가리면 굳이 소리 높일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일을 키우는 건 그릇이 안 되는 자가 그 그릇이 놓여선 안 될 자리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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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을 말린 교무부장은,​ 오히려 교감 편을 들지 않고 교사를 두둔했다고 해서 미움을 받았습니다. 미운털이 박힌 그 교무부장이 저에게 넌지시 축구 시간 수필 복사 사실을 알려주어서 저도 비로소 그런 줄 알았습니다. 일이 커질 때를 대비한 증거자료 수집이겠죠?​  ​이것을 말린 교무부장은,​ 오히려 교감 편을 들지 않고 교사를 두둔했다고 해서 미움을 받았습니다. 미운털이 박힌 그 교무부장이 저에게 넌지시 축구 시간 수필 복사 사실을 알려주어서 저도 비로소 그런 줄 알았습니다. 일이 커질 때를 대비한 증거자료 수집이겠죠?​
  ​국어시간에 축구를 하면 안 된다고 믿는 자들이 국어를 정말 글자 안에 가두어놓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엄연한 학교 현실입니다.  ​국어시간에 축구를 하면 안 된다고 믿는 자들이 국어를 정말 글자 안에 가두어놓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엄연한 학교 현실입니다.
줄 1242: 줄 1158:
  
  ​2006년에 옆 면소재지의 회인중학교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옮겨도 저에게는 똑같은 생활이었습니다. 봄이 오면 아이들 데리고 산을 한 바퀴 돌고, 냉이 캐고……. 그런데 회인은 내북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동네에 오일장이 서는 것입니다. 너무 정겨운 모습입니다.  ​2006년에 옆 면소재지의 회인중학교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옮겨도 저에게는 똑같은 생활이었습니다. 봄이 오면 아이들 데리고 산을 한 바퀴 돌고, 냉이 캐고……. 그런데 회인은 내북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동네에 오일장이 서는 것입니다. 너무 정겨운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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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날의 내력은 오래 되었겠지만,​ 지금은 농촌에 사람이 없어 아침나절에 반짝 열리고 맙니다. 오전 7시 경에 열려서 정오쯤이면 파장이 됩니다. 좀 붐비는 철이라야 버섯이 나오는 초여름과 고추가 나오는 가을철 몇 차례뿐입니다.  ​장날의 내력은 오래 되었겠지만,​ 지금은 농촌에 사람이 없어 아침나절에 반짝 열리고 맙니다. 오전 7시 경에 열려서 정오쯤이면 파장이 됩니다. 좀 붐비는 철이라야 버섯이 나오는 초여름과 고추가 나오는 가을철 몇 차례뿐입니다.
  ​그래서 1교시에 국어가 든 날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장 구경을 갔습니다. 장 구경을 다녀와도 시간은 30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구경거리도 그만큼 적고 학교도 동네에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교시에 국어가 든 날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장 구경을 갔습니다. 장 구경을 다녀와도 시간은 30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구경거리도 그만큼 적고 학교도 동네에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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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게 눈꼴이 사나웠던 모양입니다. 교무부장을 통해서 그런 일이 있으면 구두로라도 허락을 받고 나갔으면 한다는 말이 들어왔습니다. 거리로 치면 100m 가는 것을 허락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장에 가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가 봐야 크게 새로울 것도 없고 아이들은 그 동네에 사는 애들이 많아서 그게 큰 자극을 주는 체험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눈꼴이 사나웠던 모양입니다. 교무부장을 통해서 그런 일이 있으면 구두로라도 허락을 받고 나갔으면 한다는 말이 들어왔습니다. 거리로 치면 100m 가는 것을 허락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장에 가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가 봐야 크게 새로울 것도 없고 아이들은 그 동네에 사는 애들이 많아서 그게 큰 자극을 주는 체험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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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한 달도 채 안 되어 군 교육청에서 공문이 왔습니다. 재래시장 위축으로 시장 상인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학생들에게 체험학습이나 견학을 권장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의 생각이 갑자기 바뀐 교장이 아침 교무회의 시간에 그렇게 떠들고 있었습니다. 허긴, 교무부장을 통해서 간접 전달한 것이었으니,​ 표면상 교무회의 석상에서 한 말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한 달도 채 안 되어 군 교육청에서 공문이 왔습니다. 재래시장 위축으로 시장 상인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학생들에게 체험학습이나 견학을 권장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의 생각이 갑자기 바뀐 교장이 아침 교무회의 시간에 그렇게 떠들고 있었습니다. 허긴, 교무부장을 통해서 간접 전달한 것이었으니,​ 표면상 교무회의 석상에서 한 말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