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

중세 국어

훈민정음 제자 원리

  • 훈민정음 표준 해설서_국문.pdf (문체부 산하 국립한글박물관에서 만들고 교육부에서 검토한 <훈민정음 표준 해설서>를 공문으로 보내드린 적이 있습니다.(2017년 6~7월경) 문서등록대장에서 검색해보세요. ^^ 교과서마다 제자원리 설명이 조금씩 달라 (2015 개정) 교과서를 만드시는 출판사와 전국의 국어 샘들께 보내드렸습니다.
  • 한글 위대한 문자의 탄생 (mbc는 예전버전, ebs 신버전 그런데 학습지는 mbc 것 만 있어요. 예전에 박안수샘이 만드신 것이예요) 영상: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ED%95%9C%EA%B8%80%EC%9C%84%EB%8C%80%ED%95%9C%EB%AC%B8%EC%9E%90%EC%9D%98+%ED%83%84%EC%83%9D 학습지: 한글날기념비디오감상문학습지완성본.hwp (파일 추가 바람)

토론 모음

합성의 원리
훈민정음의 제자원리라는 단원의 수업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글자들을 합성해서 쓰는 방법을 합성의 원리라고 하는데 이게 맞는 표현인가요?
중성 초출자와 재출자는 합성의 원리로 만든다고 합니다.
교과서 바탕글에는 무엇으로 표현되어 있나요?

학자에 따라 '합성'이라 쓰는 분도 계시고, 김슬옹샘께서는 '배합'이란 단어를 쓰셨더라구요…그런데 '합성의원리'라는 용어 자체가 노출되어 있나요? 제가 쓰는교과서에는 연서,병서, 합용의 원리가 나와요…

상형/가획/병서,,,로 나오네요. 병서, 그리고 합용 병서의 원리라는 말이 있고
합용의 원리
음절합자의 개념을 합용의 원리로 해석할 수 있나요?
음절합자는 합용의 원리가 아닙니다
반설음과 반치음
반설음반치음에대해질문드리겠습니다. 이때 '반'의 의미가정확히무엇을의미하는것인지요? 다른 설음과치음에비해 소리가약하기때문에 '반'이붙는것인지, 다른소리와섞이기때문에'반'이붙는것인지모르겠습니다. 쌤들의 고견부탁드립니다.^^
제 생각인데요. 틀릴 수도 있습니다. 본래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가획과 상형의 원리를 통해서 제자하였는데요. 특정 음운은 가획을 하였지만 소리의 거세짐이 없는 글자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위에서 말한 반설음과 반치음인 것 같습니다. 이체자라고 하여, 옛이응과 반설음(ㄹ), 반치음(ㅿ)이 여기에 포함되는데, 혹시 그러한 음운적 성격 때문에 반치음, 반설음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ㅠ
어두자음군
선생님들, 이관규의 학교문법론에서는 ㅂ계열과 ㅂㅅ계열만 어두자음군이고 ㅅ계열은 어두자음군이 아니라고 하는데 어디에서는 ㅅ계열도 어두자음군이라고 설명합니다. 선생님들은 어떻게 설명하시나요?
개론서, 학자들마다 주장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이기문과 생각이 나진 않지만 서로 대치 되는데요, 보통은 ㅅ계열은 어두자음군에서 따로 발음나지 않고, 된소리를 표기해 주었다고, 많은 책들에서 논합니다. 논란이 되는 건, 된소리가 형성되지 않았을 시기와, 형성되었을 때의 표기 차이, 음운 차이로 인해 이견이 있고, 이기문의 국어사 개설에서도 잠깐 이야기합니다. 학교에서는, 이렇게 자세하게 다루지도 않을 뿐더러, 학생들이 물으러 오지도 않지만,교사는 해당 내용에 대해 항상 준비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개론서의 다양한 입장에 대한 주장과 논거를 정리해 두시고, 학생들이 혹여 질문하는,똑똑한 친구가 있다면, 그런 근거들을 심화로 설명해 주시면 좋습니다. 학교에서(교과서들도) ㅅ계열은 어두자음군으로는 치지 않음으로 보입니다. 참고로,저 ㅅ계열이 훗날 된소리가 되는 전체적 경향에 혼란을 주는 건 사잇소리 'ㅅ'과 그 경음화, 표기 위치와 겹쳐져 공부하면 할수록 재밌고, 어렵기도 한 부분입니다.
ㅅ계열도 어두자음군으로 보는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예를 들어 'ㅅㄱ'을 된소리로 보면 ㄲ음을 나타내는 글자가 'ㄲ'과 'ㅅㄱ' 두 개로 중첩되는 불합리함이 있기에 된소리가 아닌 어두자음군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ㅅ계열의 어두자음군설을 뒷받침하는 용례로는 'ㅅㄴㆍ이' 가 지금이 '사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ㅅ굼'이 지금의 '꿈'인 것처럼 된소리설을 뒷받침하는 용례도 많고, 이들은 당시 각자병서표기가 고유어표기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ㄲㄸㅃㅆㅉ 은 한자어의 유성음 발음에 쓰였던 표기이고 ㅅㄱ 등이 진짜 된소리표기였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ㅅ계열은 된소리가 맞는데 적어도 ㅅㄴ은 어두자음군이라고 주장(사나이가 근거)하는 분의 책도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누가 물어본다면 (중학교라 안 가르치고 안 물어봅니다..) 학교문법에 충실하게 공부하고 혹 더 궁금하다면 각 주장 소개하고 어떤 주장이 옳은 지는 알 수 없으니 각각의 언어자료가 어떤 주장을 지지하는 용례(예를 들어 'ㅅ굼'은 된소리설, 'ㅅㄴ이'는 어두자음군설)인지만 알면 된다고 설명할 것 같습니다
표음적 표기의 예외
세종어제훈민정음에서 '스믈여듧'이라는 단어에서 '듧'이 8종성법의 예외로 겹자음이 인정된 단어잖아요. 그럼 종성법의 표음적 표기 방식에서 벗어난 거라고 볼 수 있지 않나요?
자음군이라 실제로 2개 자음을 모두 발음했을 것으로 추정. 영어에서 sharp help 처럼
용비어천가 '곶됴코'에서 ㅈ 받침 쓴걸 표의적 표기로 봅니다
이체자와 소리의 세기
훈민정음에서 이체자는 가획의 원리에서 벗어난 글자이니, 기본자나 가획자보다 소리의 세기가 커진다라는 건 틀린 진술이 아닌가요?
최현정 : 저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소리의 세기라 함은 자음강도, 즉 방해나 장애를 받는 정도로 해석하면 “거센소리 > 예사소리 >비음 > 유음 > 저모음 > 고모음” 이렇게 봅니다

이체자는 소리의 세기와 관련이 없습니다. ㄹ이 ㄴ보다 세다고 할 수 없고 반치음은 유성마찰음이어서 마찰음인 ㅅ보다 오히려 약해지니까요

이체자는 소리의 세기가 세진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비상교과서 중 3에 실려있어요
ㅋ은 ㄱ보다 소리가 세져서 가획했는데 이체자는 가획한 의미가 없다.
천재(김) 중3 교과서에는 이체자는 모양은 가획된 것처럼 보이지만 소리가 세진게 아니라고 써 있어요

아~ 그렇네요. 가획의 의미는 없다고 실려있네요~

발음기관 상형자
한글의 제자원리 중 상형의 원리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뜬 것을 모두 자음이라 부른다” 은 틀린 진술일까요 맞는 진술일까요
음.. 축어적으로만 해석하면 '바르지 않다'라고 말할 순 없겠네요 ㄷㄷ

네 그러게요. 의도는 틀리게 하려고 쓴 진술인데 이제 보니 애매하더라구요. 학생 왈 “모든 자음은 발음기관을 본떴다” 면 틀린것이지만 저 진술은 맞는거 아니냐고 하는데 제가 논리적으로 반박을 못하겠어서… 복수정답 인정해야 하나 싶습니다.

근대 국어 7종성법
근대 국어의 7종성법도 종성의 표기법에 있어서 표음적 표기법이라 할 수 있나요?
네. 8종성 표기법과 마찬가지로 7종성 표기법도 표음적 표기법입니다. 'ㄷ'과 'ㅅ'의 발음, 표기 경쟁에서 표기는 'ㅅ'이 발음은 'ㄷ'이 살아남은 것으로 추정되며, 각 개론서들을 종합해서 보시면 각 문헌에 과도기적 사례들이 있어요. 발음이 어떤 것이냐와 관계 없이 결국 소리나는 대로 쓰는 표음적 표기입니다.
치성의 'ㅅ' 받침 발음이 경쟁에서 밀리고 표기는 'ㄷ'과의 경쟁에서 이겼다. 현대로 오면서 발음은 'ㄷ', 표기는 표의적 표기를 살려서 적죠.
왕건환 왕국어 : 넹 하필 ㅅ으로 적히는 건 체언 말음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에서 ㅅ으로 실현되기 때문.. 예전에 임용시험에도 나왔죠 ㅋ /라켓/ [라케시] ㅋㅋ
상형 이외의 원리
제자 원리 저도 궁금한게 기본자는 상형으로 만들었는데 나머지 글자들이 상형자에서 파생되어서 그것들도 상형의 원리가 기본적으로 있다 봐야하나요?
아닙니다. 상형자는 기본자에 한정, 그 다음은 가획의 원리. 그리고 이체는 '기본과 가획'의 원리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형태의 글자입니다. 기본자가 의미가 있는 것은 같은 기본자 모양으로부터 가획한 글자가 같은 발음기관, 그리고 소리의 세기와 긴장 정도와 연계되는 과학적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제자 원리는 상형, 가획, 이체 자음은 따로 봐야 합니다.

훈민정음해례에 따르면 셋 다 상형입니다. 가획은 소리의 려함에 따라 이체는 모양을 본땄으나 체를 달리한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원본의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획도 “이체의 경우 가획한 뜻이 없다(다른 글자와 다르다)“로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윤국한 선생님, 그럼 자음의 가획자도 상형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소리의 세기가 세짐에 따라 획만 더한 것으로 봐야 하나요?

획의 수가 소리의 성질을 예상할 수 있게 하고 전체적인 윤곽이 발음기관의 모양을 담고 있다 이렇게 봐야 할 겁니다. 자질문자라는 명칭도 이런 뜻에서 얻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본자,가획자,이체자는 기본적으로 +상형 자질을 가지는 셈이군요..! 샘들 답변 감사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제자원리는 각각이고, 자질 관련 따로 봐야 함으로 알고 있습니다.ㅎ
그렇네요 자질은 보통 소리 세기에 가획하는걸 보고 자질문자라 하였던게 기억나네요 :) 음 자질문자 관련 하나 덧붙이겠습니다. 샘슨이 말한 자질문자의 자질은 조음위치 자질과 조음방법 자질 두 가지를 모두 말합니다. 그리고 이체자도 상형이나 그 체가 다르다(이기체)라고 해례에 설명했습니다.
이지은샘이 올려주신 자료가 해례를 요약한 것이니 필히 원본번역이라도 보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이지은 : 교과서마다 제자원리 해설이 조금씩 다릅니다. 학자마다 이견이 있고요. 그런 맥락에서 국립한글박물관이 만든 표준해설서를 참고하시라고 올렸습니다.

참고 자료

근대 국어

국어사 수업

  • 여기 제가 고1 수업한 교과서 설명이랑 해례본 원본 스캔 해설 등등 자료 올려놨으니 참고해 쓰셔요~ http://cafe.naver.com/wkorean6/167

훈민정음 퀴즈

  • <훈민정음 창제 575돌, 세종 즉위 600돌 기념>
  • 0X 28문제를 통한‘훈민정음/한글’기본 상식 짚어보기
  • 김슬옹_한글혁명(살림터)/웃는 한글(꿈터) 저자
  • * 월간지 <영웅>지에 실릴 원고입니다
  • 올해는 세종대왕(본명 이도)이 한글을 창제(1443)한 지 575돌, 반포(1446)한 지는 572돌이 되는 해이다. 더욱이 비밀리에 한글을 단독으로 창제하고 집현전 일부 학사들의 도움을 받아 해설서인 ≪훈민정음≫(1446) 해례본까지 펴낸 세종대왕 즉위 600돌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 해례본 원본은 1940년에 경상북도 안동에서 이용준에 의해 기적처럼 발견되어 현재 간송미술문화재단에서 소장하고 있다. 2008년 배익기에 의해 발견된 또 다른 원본인 상주본은 소장자가 공개를 안 하고 있다. 이 해례본은 1997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15년 인류 최초의 복간본이 간행(해설 김슬옹)되었다(김슬옹, 2017,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 박이정. 참조).
  • 이런 뜻깊은 역사에 비해 많은 사람들은 훈민정음과 한글의 역사와 기본 상식에 대해 잘못 알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유트브(https://www.youtube.com/watch?v=ZxuG-l3yPhQ)에 올린 필자의 “우리가 모르는 한글 이야기”가 최근 조회 20만, 댓글 600개를 돌파해 그 내용을 바탕으로 28퀴즈를 마련해 보았다. 동영상 원고는 “김슬옹, 2017, ≪한글혁명≫, 살림터, 14-36쪽”에 실려 있다.
  • 1. 세종이 우리말을 만들었다.( )
  • 2. 한글을 창제한 사실을 세종이 처음 알린 날은 1443년 12월(음력)이다. ( )
  • 3. 한글(훈민정음)을 일반 백성들에게 반포한 날은 1446년 10월 9일(음력)이다. ( )
  • 4. 한글은 조선시대 고종의 국문 칙령이 반포(1895년) 되기 전에는 공식문자(공용문자)가 아니었다. ( )
  • 5 한글은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이 함께 창제했다. ( )
  • 6. 세종이 1446년에 직접 펴낸 훈민정음 해설서(해례본)는 현재 간송본과 상주본 두 권이 남아 있다.(*상주본이 원본이라 인정할 경우) ( )
  • 7. 최만리,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 일곱 명은 한글 창제 후에 반대 상소를 올렸다.( )
  • 8. 조선시대 양반들은 많은 상소를 올려 한글 사용 자체를 반대했다.( )
  • 9. 한글 반포 후에 중국은 조선의 훈민정음이라는 새 문자를 주목했다. ( )
  • 10. 한글은 조선시대 때 ‘훈민정음’이라 주로 불렀다.( )
  • 11. 연산군은 한글을 무조건 못쓰게 했다. ( )
  • 12. 한글의 우수성을 서양에 처음으로 알린 이는 하멜이다. ( )
  • 13. 한글은 조선시대 때 주로 하층민에 의해 발전했다. ( )
  • 14. 한글 발전의 최대 공로자는 정철, 윤선도, 김만중과 같은 문학가들이다. ( )
  • 15. 한글은 세계 기록 유산이다. ( )
  • 16. 일반 공공 문서에서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한 것은 독립신문(1896)에서였다. ( )
  • 17. 북한의 조선글날도 10월 9일이다. ( )
  • 18. ‘한글’이란 명칭은 북한에도 쓴다.( )
  • 19. ‘언문’은 낮춤말로 세종은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
  • 20. 한글 자음 ‘ㄴ’은 혀끝이 입천장에 닿는 모습을 본떴다. ( )
  • 21. 한글 자음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습을 본떴다. ( )
  • 22. 모음을 만든 기본자는 ‘ ·, ㅡ,ㅣ’ 세 자이다.( )
  • 23. 15세기 훈민정음 기본자는 28자이다.( )
  • 24. 현대 한글 기본자는 모음자 14자, 자음자 10자 모두 24자이다.( )
  • 25. 실제 쓰이는 현대 한글 자음자와 모음자를 모두 합치면 40자이다.( )
  • 26. 현대 한글 자모로 조합할 수 있는 글자 수는 11,172자이다. ( )
  • 27) 정조 임금과 정약용, 박지원 같은 위대한 실학자들도 한글을 즐겨 썼다.( )
  • 28) 구운몽, 서포만필 등 한글 소설을 남기고 한글을 나랏글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는 허균이었다.
  • 저자의 한글 관련 단행본 목록
  • 김슬옹(2018). ≪웃는 한글≫. 꿈터.
  • 김슬옹(2017/2018).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개정증보판)≫. 박이정.
  • 김슬옹(2017). ≪한글혁명≫. 살림터.
  • 김슬옹 글/지문 그림(2017). ≪역사가 숨어 있는 한글가온길 한바퀴≫. 해와나무.
  • 김슬옹 엮음(2015). ≪훈민정음(언문·한글) 논저·자료 문헌 목록≫. 역락.
  • 김슬옹 글/강수현 그림(2015). ≪누구나 알아야 할 훈민정음, 한글이야기 28≫. 글누림
  • 김슬옹(2015).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의 탄생과 역사≫(간송본 복간본 해제). 교보문고.
  • 김슬옹(2015). ≪퀴즈 세종대왕≫. 한글파크.
  • 김슬옹(2013). ≪한글을 지킨 사람들≫. 아이세움.
  • 김슬옹(2013). ≪한글 우수성과 한글 세계화≫. Hangulpark.
  • 김슬옹(2013). ≪세종 한글로 세상을 바꾸다≫. 창비.
  • 김슬옹(2013). ≪열린 눈으로 지식의 무지개를 펼쳐라≫. 글누림.
  • 김슬옹(2012). ≪조선시대의 훈민정음 발달사≫. 역락.
  • 김슬옹(2010/2011). ≪세종대왕과 훈민정음학(개정판)≫. 지식산업사.
  • 김슬옹(2010). ≪디지털 문명의 으뜸 글자≫. 한솔교육.
  • 김슬옹‧김응(2017). ≪한글 대표 선수 10+9≫. 창비.
  • 서상규ㆍ김슬옹 외(2017). ≪불교와 한글, 한국어≫. 한국문화사.
  • 김슬옹·김응(2016). ≪역사를 빛낸 한글 28대 사건≫. 아이세움.
  • 김슬옹·김불꾼·신연희(2013). ≪한글이름 사전≫. 한겨레출판사.
  • 김슬옹(2010). ≪디지털 문명의 으뜸 글자≫. 한솔교육.
  • 김슬옹(2008). ≪시간이 흐르면 말도 변해≫. 웅진다책.
  • ◆ 퀴즈 28 <답과 풀이>
  • 1) 세종이 우리말을 만들었다. (X) *도움말: 세종이 만든 것은 우리글, 한글이다.
  • 2) 한글을 창제한 사실을 세종이 처음 알린 날은 1443년 12월(음력)이다. (0) *도움말: 1443년 음력 12월에 창제되었다. 정확한 날짜 기록은 없다. 대략 10여년 이상의 비밀 연구 끝에 28자를 완성한 뒤 일부 신하들에게 알린 것이므로 무슨 특허 발명품처럼 특정 날짜를 드러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종실록 1443년 음력 12월 30일자 기록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라고 하였다.
  • 3) 한글(훈민정음)을 일반 백성들에게 반포한 날은 1446년 10월 9일(음력)이다.(X) *도움말: 1443년 음력 9월 상한(상순)에 반포되었다. 상순은 1일부터 10일 사이를 가리킨다. 그래서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기준으로 양력으로 바꿔 정한 날이 한글날 10월 9일이다.
  • 4) 한글은 조선시대 고종의 국문 칙령이 반포(1895년) 되기 전에는 공식문자(공용문자)가 아니었다.(X) *도움말: 당연히 공식문자였다. 다만 한자가 주류(제1) 공식문자였고 한글은 비주류(제2) 공식문자였다. 공식문자란 공적 주체가 공적 상황 속에서 제도나 법률에 의해 공표되고 시행된 문자를 말한다. 한글은 공적 주체인 임금(세종)이 만들고 나라에서 펴낸 각종 문서에 사용되었다. 조선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서는 하급 관리 과거 과목으로 설정하였고 ‘삼강행실’과 같은 국가 윤리를 한글(언문)으로 풀어 백성들에게 가르치도록 규정하였다.
  • 고종의 국문 칙령은 비주류 공식문자로서의 한글(국문)을 주류 공식문자로 선언한 것이다. 그런대도 고등학교 교과서와 대다수 국어사학자들은 공식문자가 아니었다고 잘못된 지식을 가르치고 있다. 한글을 주류 문자로 선언한 것은 1895년 고종의 국문 칙령이었다.
  • 고종은 국문(한글)을 본을 삼고 한문 번역이 국한문 혼용문을 함께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1894년에는 내각에 지시하고 1895년에는 전국에 반포했다. 이 칙령 자체가 한문과 국한문 혼용으로 발표되어 온전한 주류 문자의 면모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주류 문자로 선언한 것만은 분명하다.
  • 5) 한글은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이 함께 창제했다. (X) *도움말: 공동 창제는 공개 연구를 했다는 것인데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1443년 창제 후에 한글 반포를 위한 연구를 집현전 일부 학사들과 함께 하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신하들(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과 함께 펴내다 보니 공동 창제설이 널리 퍼졌다.
  • 6) 세종이 1446년에 직접 펴낸 훈민정음 해설서(해례본)는 현재 간송본과 상주본 두 권이 남아 있다.(*상주본이 원본이라 인정할 경우) (X) *도움말: 발견된 것이 두 권이다. 어딘가에 또 남아 있을 수 있다.
  • 7) 최만리,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 일곱 명은 한글 창제 후에 반대 상소를 올렸다.(0) *도움말: 28자의 창제는 1443년 음력 12월이고 최만리 외 6인이 반대 상소를 올린 것은 1444년 음력 2월 20일이다. 그러므로 창제를 반대했다기보다는 반포를 반대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최만리 혼자 반대 상소를 올린 것은 아니라 여섯 명과 함께 올린 연명 상소였다. 최만리는 당시 집현전 부제학으로 최고의 학자요 청백리로서 뛰어난 학자였다. 이 상소 때문에 우리는 훈민정음 창제 동기와 과정 등의 여러 문제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한글을 반대했다고 해서 지금의 시각으로 나쁘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 8) 조선시대 양반들은 많은 상소를 올려 한글 사용 자체를 반대했다.(X) *도움말: 조선시대 양반들이 한글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1446년 정식 반포 이후 단 한 건의 반대 상소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2류 문자로 철저히 무시했다.
  • 9) 한글 반포 후에 중국은 조선의 훈민정음이라는 새 문자를 주목했다. (X) *도움말: 조선은 새 문자 창제 사실을 중국에 적극적으로 알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 한자음 표기에 대한 두 권의 책을 공식 출판했다. 동국정운(1448)과 홍무정운역훈(1455/단종3년)을 펴냈다. 특히 홍무정운역훈은 8권이나 되는 방대한 책으로 명나라 태조의 명으로 펴낸 <홍무정운>의 한자음을 한글로 표기한 책이다. 이는 중국이 천 년 이상 그들의 발음을 온전하게 표기하지 못한 것을 정확하게 표기한 그 당시 한자 문화권의 지각변동과 같은 혁명과 같은 책이었다. 그런대도 중국(명나라)은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철저히 무시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몰랐을 것이라고 하지만 위 책들이 공식 출판되었으므로 아예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위 책들이 중국에 얼마나 전해졌는지 알 수 없고, 세종이 운명했을 때 중국에 알린 부고(세종 32년/1450/02/20_세종실록)에 나열한 세종 업적에 훈민정음 관련 내용이 없고 중종 34년인 1539년 세종실록 11월 22일자 기록에 주양우가 한글을 중국인에게 가르쳐 준 사건이 드러나 기밀 누설죄로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아예 당시 조선 훈민정음 반포 사실을 숨겼다는 설도 있다.
  • 10) 한글은 조선시대 때 ‘훈민정음’이라 주로 불렀다.(X) *도움말: ‘훈민정음’은 특별한 때만 쓰였고 실제로는 주로 ‘언문’이라 불리다가 1910년 이후 ‘한글’이란 명칭이 널리 퍼졌다.
  • 11) 연산군은 한글을 무조건 못쓰게 했다. (X) *도움말: 16세기 초인 1504년에 연산군은 자신을 비판한 한글 벽서에 분노하여 한글을 배우거나 쓰지 못하게 하였으나 한문을 한글로 번역한 책은 예외로 하였고 궁녀들에게 한글로 노래 가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 12) 한글의 우수성을 서양에 처음으로 알린 이는 하멜이다. (0) 하멜은 하멜표류기에서 조선에는 한자, 이두보다 더 뛰어난 문자(언문)가 있다고 썼다. “문자를 쓰는 데는 세 가지 다른 방법이 있다. 첫 번째 것은 주로 쓰는 방식인데 중국이나 일본의 글자(한자, 괄호 인용자)와 같다. 조정과 관계된 공식적인 국가 문서뿐만 아니라 모든 책들이 이런 식으로 인쇄된다. 두 번째 것(이두, 인용자)은 네덜란드의 필기체처럼 매우 빨리 쓰는 문자가 있는데 이 문자는 고관이나 지방관들이 포고령을 쓰거나 청원서에 대한 권고를 덧붙일 때 쓰며 서로 편지를 쓸 때에도 사용한다. 일반 백성들은 이 문자를 잘 읽을 수가 없다. 세 번째 것은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문자로 배우기가 매우 쉽고, 어떤 사물이든지 쓸 수 있다. 전에 결코 들어 보지 못한 것도 표기할 수 있는, 더 쉽고 더 나은 문자 표기 방법이다. 그들은 이 글씨들을 붓으로 매우 능숙하게 빨리 쓴다._헨드릭 하멜/김태진 옮김(2003). 하멜표류기. 서해문집. 136-7쪽.”
  • 13) 한글은 조선시대 때 주로 하층민에 의해 발전했다. (X) *도움말: 하층민은 ‘평민’이하를 가리킨다. 조선시대에 하층민은 문자생활 자체가 힘들었다. 한글을 만든 것도 지배층이고 이를 널리 보급한 것도 지배층이었다. 물론 하층민과의 소통을 전제로 만든 것이므로 하층민이 한글 창제와 발전의 계기가 된 것도 분명하다.
  • 14) 한글 발전의 최대 공로자는 정철, 윤선도, 김만중과 같은 문학가들이다. (X) *도움말: 정철, 윤선도, 김만중, 김천택 등 조선시대 문학가들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최대 공로자로 보기는 어렵다. 왕실 여성들과 양반가 영성들의 공로가 더 크기 때문이다. 물론 규방가사와 같은 한글 가사를 쓴 수많은 여성 문학가들도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생활 속에서 한글로 얼마나 문자생활을 했느냐가 중요하다. 왕실 여성들은 공문서에 한글을 써서 한글의 가치를 높였고 양반가의 여성들은 끊임없이 각종 분야에 한글을 사용하여 한글 발전의 주춧돌 구실을 했다.
  • 15) 한글은 세계 기록 유산이다. (X) *도움말: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세종이 1446년에 펴낸 <훈민정음>이란 책으로 흔히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른다.
  • 16) 일반 공공 문서에서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한 것은 독립신문(1896)에서였다. (0) *도움말: 공공 매체에서 띄어쓰기를 한 것은 독립신문이 처음이다. 일반 문서가 아니라면 독립신문보다 20여년 앞서 영국인 목사 존 로스가 1877년에 펴낸 <Corean Primer>(조선어 첫걸음)에서 띄어쓰기를 하였다.
  • 17) 북한에는 한글날(10.9)이 없다. (0) *도움말: 남한과 같은 한글날은 없다. 대신 1월 15일을 조선글날 또는 훈민정음 기념일로 삼아 기린다. 남한은 반포를 기준으로 북한은 창제를 기준으로 기념일을 삼았다.
  • 18) ‘한글’이란 명칭은 북한에도 쓴다.(X) *도움말: ‘한글’이란 명칭은 분단 이전인 1910년이후부터 쓰이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이 용어를 남한의 용어로 규정하고 쓰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조선글’이라 한다.
  • 19) ‘언문’은 낮춤말로 세종은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X) *도움말: ‘언문’은 원래는 훈민정음을 가리키는 보통 명칭이었지만 사대부들이 깔보다 보니 낮춤말이 되었다. 세종도 ‘언문’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 20) 한글 자음 ‘ㄴ’은 혀끝이 입천장에 닿는 모습을 본떴다. (X) *도움말: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습을 본떴다고 했다. ‘는/은’ 등을 발음해 보면 그 모습을 정확히 알아챌 수 있다.
  • 21) 한글 자음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습을 본떴다. (0) *도움말: ‘윽/극’ 등을 발음해 보면 그 모습을 정확히 알아챌 수 있다.
  • 22) 모음을 만든 기본자는 ‘ ·, ㅡ,ㅣ’ 세 자이다. (0) *도움말: 각각 하늘, 땅, 사람을 본떴다. 하늘은 양성, 땅은 음성, 사람은 중성(양음)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말에 있는 음양의 기운과 양성모음(ㅏ, ㅗ)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ㅓ, ㅜ)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모음조화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 23) 15세기 훈민정음 기본자는 28자이다. (0) *도움말: 자음 17자, 모음 11자 모두 28자였고 이 중 네 글자가 안 쓰이거나 변형되었다.
  • 24) 현대 한글 기본자는 모음자 14자, 자음자 10자 모두 24자이다. (X) *도움말: 자음자가 14자, 모음자가 10자이다.
  • 25) 실제 쓰이는 현대 한글 자음자와 모음자를 모두 합치면 40자이다.(0) *도움말: 자음자는 기본 자음자 외에 된소리글자 5자가 더 있어 19자, 모음자는 기본 10자 외에 11자가 더 있어 21자, 모두 40자이다.
  • 26) 현대 한글 자모로 조합할 수 있는 글자 수는 11,172자이다.(0) *도움말: 첫소리글자(초성자)로 쓸 수 있는 자음자가 19자, 가운뎃소리글자(중성자)로 쓰이는 글자가 21자, 끝소리글자(종성자, 받침)으로 쓰일 수 있는 자음이 겹받침 포함 27자이다. 따라서 받침 없는 글자는 19*21=399자, 받침 있는 글자는 399자*27=10,773자이다. 받침 없는 글자와 받침 있는 글자를 합치면 11,172자이다.(19*21*28=11,172) 실제 쓰이는 글자는 대략 2500여자 정도 된다.
  • 27) 정조 임금과 정약용, 박지원 같은 위대한 실학자들도 한글을 즐겨 썼다.(X) *도움말: 정조는 한글 편지와 한글 윤음서 등을 남겼으나 즐겨 쓰지는 않았다. 정약용과 박지원은 한글 사용을 싫어하였고 사용 자체를 거부하였다.
  • 28) 구운몽, 서포만필 등 한글 소설을 남기고 한글을 나랏글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는 허균이었다. (X) *도움말: 김만중이다. 김만중은 한글 소설도 남겼지만 평론집인 <서포만필>에서 한글을 국서(나랏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로는 혁명과 같은 주장이었다. 물론 허균도 홍길동이라는 걸작 한글소설과 한글 표기 시를 남겼다.
  • * 이 원고는 “김슬옹(2015). ≪퀴즈 세종대왕≫. 한글파크. 159-164쪽”에 실려 있는 20문제와 어린이용의 간단한 풀이를 더 깊게 늘려 보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