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시 모음

  • 기의(원관념)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기표(보조관념) 자체 또한 하나의 세계로 완성되는 비유: 상징. 이러한 상징을 이용해 쓴 시들 모아 봅니다.

백조

- 말라르메

순결하고 생기 있어라, 더욱 아름다운 오늘이여,
사나운 날개짓으로 단번에 깨뜨려 버릴 것인가.
쌀쌀하기 그지 없는 호수의 두꺼운 얼음.
날지 못하는 날개 비치는 그 두꺼운 얼음을.

백조는 가만히 지나간 날을 생각한다.
그토록 영화롭던 지난 날의 추억이여!
지금 여기를 헤어나지 못함은 생명이 넘치는 
하늘 나라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 벌이런가.
이 추운 겨울날에 근심만 짙어진다.

하늘 나라의 영광을 잊은 죄로 해서
길이 지워진 고민의 멍에로부터 백조의 
목을 놓아라, 땅은 그 날개를 놓지 않으리라.

그 맑은 빛을 이 곳에 맡긴 그림자의 몸이여
세상을 멸시하던 싸늘한 꿈 속에 날며,
오, 구더기! 눈도 귀도 없는 어둠의 빛이여,
너 위해 부패의 아들, 방탕의 철학자
기뻐할 불향배의 사자는 오도다.

내 송장에 주저 말고 파고들어
죽음 속에 죽은, 넋없는 썩을 살 속에서
구더기여, 내게 물어라, 여태 괴로움이 남아 있는가고……
  • 흔히 '백조의 소네트'로 널리 애송되고 있는 걸작, 그러나 백조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시를 쓰지 못하는 고뇌로 괴로워 하는 시인의 내부의 혼을 백조에 의탁하여 노래한 것이다.

나룻배와 행인(行人)

-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나룻배와 행인에 대한 이야기 그대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건네다주고 남겨지고 버려지면서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인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읽으면 더욱 풍성해진다.

은유시도 보시오.